▲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농장많은 경우 시설재배 중인 배추와 같은 채소는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노동력을 빌려 생산하고 있다.
고기복
그동안 본국에 다섯 번을 갖다 왔고, 내년 1월에 여섯 번째 휴가를 간다. 사장은 일감이 없는 겨울이면 늘 휴가를 갔다 오라고 요구했다. 모옴은 놀면서 돈 쓰느니 고향에 갔다 오는 게 낫지 않느냐며 떠미는 사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휴가비나 항공료를 주는 것도 아니다. 갔다 올 때면 은근히 뭔가 바라는 사장 눈치 때문에 모옴은 휴가 때마다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원해서 가는 휴가도 아닌데, 늘 무급휴가다.
모옴은 매해 항공료와 오가며 드는 경비 외에 선물 등으로 한 달 이상의 급여가 나가는 게 억울했다. 그런 업체에서 4년 10개월을 일하고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할 기회를 얻었다. 마침 일감이 없던 혹한기였다. 사장은 재입국하자마자 다시 휴가를 가라고 했다. 무급휴가 때마다 불만이 없지 않았던 모옴은 그 요구를 거절했다. 오가며 드는 돈도 돈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자주 오가냐? 사장이 좋은 모양이다"라며 돈 빌려 달라고 손 내미는 동네사람들 보기도 민방해서였다.
휴가 거절하자 '회사 나가라'고 한 사장
휴가를 거절하자, 사장은 안색이 변했다. 무급휴가가 싫으면 나가라며 모옴과 같이 재입국한 동료 나리를 해고해 버렸다. 모옴이 재입국하고 곧바로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아야 했던 이유다.
해고 후에 일자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석 달이 다 되도록 일을 찾지 못했다. 구직유효기간인 석 달을 넘겨 미등록자가 될 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할 때, 무급휴가를 거절하자 내쫓았던 사장으로부터 '일할 생각이 없느냐'며 연락이 왔다. 모옴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차하다간 구직 유효기간을 넘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뜩치 않았지만 오라는 사장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다시 일하고 올해 초에 40일간 휴가를 갔다 왔다. 모옴은 조금 억울하더라도 실직 기간 동안 마음고생하며 쓸 돈이면 마음 편하게 고향에 갔다 오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추위에 약한 모옴에게는 체력도 키우고,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모옴과 마찬가지로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한 나리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고생하러 온 건데, 매해 귀국하느라 돈 쓰고, 그 기간 동안 못 버는 것까지 감안하면 한 해에 두세 달 급여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리는 모옴이 처음 업체로 돌아갈 때 함께 하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나지 않아 나리는 버섯농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모옴은 그런 나리가 부럽기만 하다.
모옴과 나리를 보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탄력근로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탄력근로제가 실시되면 모옴과 같은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이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사실상 경영상 이유로 휴무를 강제할 때는 유급휴가가 원칙이다. 평균임금의 70%를 휴업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단, 상시 노동자가 5인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들 중에는 상시근로자를 적게 두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곳들이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