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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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날이다. 3.1운동 2년 전인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출생했다. 이날은 음력 정사년 9월 30일이다.
박정희가 태어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치학자 전인권이 쓴 <박정희 평전>에 따르면, 어머니 백남의가 최소 6~7가지 방법을 동원해 태중의 그를 지우려 했다고 한다.
"간장을 한 사발씩 마시기도 했고 밀기울(밀 찌꺼기)을 끓여서 마시다가 까무러치기도 했다. 섬돌이나 장작더미 같이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도 했으며, 디딜방아의 머리를 배에다 대고 뒤로 자빠지기도 했다. ······ 버들강아지 뿌리를 달여 마시기도 했으며, 이런저런 방법이 다 실패하자 '아이가 태어나면 솜이불에 둘둘 말아 아궁이에 던져버려야지'라는 결심을 한 후 아이 지우는 일을 포기했다."
-정치학자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 제1장.
백남의가 그런 시도를 했던 표면적 동기는 1872년생인 그가 당시 45세였던 데다가, 장녀 박귀희까지 임신 중이었기 때문인 듯하다고 전인권은 말한다.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박정희는 이후 일본군 장교가 됐지만, 일제 패망 뒤에는 국군에서 승승장구했다. 1948년 여순사건(국군 14연대의 제주4·3항쟁 진압 거부) 때 남로당에 연루돼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받았지만, 징역 10년형으로 감형되더니 얼마 안 있어 형 집행 면제를 받았다. 그 뒤 박정희는 승승장구했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가 죽은 지 39년이나 지났다. 그가 세운 유신체제도 오래전에 붕괴됐다. 그의 계승자도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상당수 사람들로부터 존경, 아니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죽어서도,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그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실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흠모를 받고 있다. 태극기 집회와 무관한 사람들 중에도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를 '숭배'하는 듯한 이들은 박정희 독재정치가 끼친 해악이나 인권 침해에 대해 설명해도, 과보다는 공을 앞세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로 정권과 재벌만 배를 불렀으며 서민들은 떡고물밖에 못 챙겼다'고 비판해도, '박 대통령이 아니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겠어?'라는 답이 돌아온다. '당신이 했으면 더 잘했겠어?"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사람들보다 어렵게 사는 이들도 그들 속에 적지 않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 덕분에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일부 기독교 보수세력과 박정희의 연관성이다. 박정희 숭배자들의 내면세계에서 그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는 신앙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 강조한 보수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