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모습들.
이희훈
내가 살던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초역세권에, 소형 평수로는 매우 드문 계단식 구조였다. 걸어서 5~10분 거리에 지하철, 버스, 공원, 백화점, 극장, 책방 등이 있고 병원, 은행, 카페, 식당 등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었다. 매매든 전세든 아침에 내놓으면 저녁에 나간다는 전설의 단지였다. 비록 지어진 지 오래된 아파트이긴 했지만, 이 집에 이사 올 때 오래 살 생각으로 어느 곳 하나 빼놓지 않고 인테리어를 해놔서 오시는 분들마다 감탄을 아끼지 않았던 그런 집이었다.
이런 조건이어서 부동산에 이 집을 내놓겠다고 연락할 때만 해도 나는 여유가 만만이었다. 하지만 그럴 입장이 아니라는 걸 1분 만에 깨달았다. 부동산 사장님의 곤란한 기색이 전화기를 통해 역력히 전해졌다.
"근처에 새로 입주를 시작하는 아파트 단지가 많아서 요즘 거래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년까지 입주 물량이 계속 이어질 거라 이 상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이 어려워요. 팔거나 세를 내놓겠다는 분들은 많은데 들어오려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제가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부동산 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하필, 왜 이때?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한 고비를 넘으니 또 새로운 고비가 눈앞에 버티고 선 형국이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거래가 되기를 바라고 기다릴 뿐.
그때부터 나의 모든 우선 순위는 집 보러 오는 분들의 방문에 맞춰졌다. 서울에서 누구를 만나도, 어떤 약속이 미리 잡혀 있어도 다 포기하고 부동산에서 원하는 시간에 무조건 맞춰 달려왔다. 평수가 크지 않으니 주로 오는 분들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혼부부거나 어린 아이 한 명을 둔 젊은 부부, 또는 자식들과 분가를 앞둔 연세 지긋한 노인분들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분들께 우리집을 공개하고, 이 집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를 강조하는 부동산 사장님의 멘트에 민망할 때도 많았다. 사람이 많이 찾아오니 별별 사람들이 많았다. 예의 바르게 둘러보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남의 집에 들어오는데 젖은 발을 닦지도 않고 마구 다니는 사람, 불쑥불쑥 옷장이며 싱크대 장과 서랍을 열어보는 사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집 안 곳곳을 마구잡이로 사진 찍는 사람, 뻔히 주인이 옆에 있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집에 대해 이런저런 품평을 하는 사람.
하지만 가장 최악은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미팅을 하다가 저녁에 집 보러 오겠다는 예비 신혼부부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시간에 맞춰 들어왔는데, 오다가 서로 말다툼을 했다고 돌아가버린 그 커플은 그 뒤에도 두 번이나 약속을 어겼다.
또 한 커플은 약속 시간보다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결국 두 시간을 넘긴 뒤에 도착했는데, 양가 어른들에 친척까지 무려 여덟 분이 집을 보러 오셨다. 정작 나와 부동산 사장님은 저녁도 못 먹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데 저녁 먹고 오느라 늦었다는 그 태연한 표정을 앞에 두고 내 얼굴이 어땠을지 상상에 맡긴다.
하지만 집을 내놓은 사람보다 보러 오는 사람이 적으니, 내가 아쉬운 입장이었다. 싫다 좋다 내색을 하기가 어려웠다. 누구에게라도 집만 나간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쉽게 거래가 되지 않았다. 약 3~4개월을 족히 전전긍긍했던 듯하다.
인터넷 카페 등을 찾아보니 6개월, 8개월 동안 거래 절벽으로 마음고생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집 주인이냐, 세입자냐에 따라 입장이 극명하게 달라지기도 했다.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최악의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매일매일 예산표를 들여다보며 대책을 고민했다.
'손에 쥔 게 넉넉하지 않는 사람이 뭔가를 하려니, 이렇게도 힘이 드는구나!'
이런 맘고생을 짐작한 주변에서는 '그러게 편하게 살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걱정어린 이야기를 건넸다. 그때마다 웃고 넘겼지만, 웃어도 웃는 건 아니었다.
매매 성사, 이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