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계곡도 무섭지 않아!잠수도 거뜬하다구!
정가람
검색창에 '리코더'를 치면
3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리코더를 배우고 있는 까꿍이는 거의 매일 리코더를 불고 있다. 아직도 틀리는 맞춤법을 리코더만큼 공을 들인다면 금방 깨칠 텐데. 시간만 나면 리코더를 불고 있는 까꿍이에게 잔소리 한두 마디 해보지만 얼마나 좋으면 끼고 살까 싶어 내버려 두었다.
처음엔 학교에서 배운 노래들을 불렀다. 유치원 때 핸드벨 발표회를 하며 계이름을 외운 <오버 더 레인보우>도 이어서 불렀다. 그러다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내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 노트북을 10분만 쓰게 해 달라 부탁을 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학교 숙제를 제외하곤 처음 하는 부탁이었다.
선뜻 노트북을 내어주고 지켜봤더니, 검색창에 '리코더'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검색 자동 기능으로 이어 뜨는 검색어는 '사랑을 했다 리코더 악보'였다. 까꿍이는 여러 악보를 살펴보고 '사랑을 했다' 리코더 동영상도 검색했다. 틀린 글자 다시 쓰라고 할 때는 그렇게도 미루더니 빛의 속도로 계이름을 받아 적었다.
play
▲ 온 가족이 부르는 "사랑을했다" 아빠의 리코더반주에 맞춰 즐거운 한때 ⓒ 정가람
몇 달 만에 알게 된 가수 이름
이런 아이들을 본 남편은 '사랑을 했다' 음원을 다운 받아 차에서 자주 틀어줬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플레이 리스트를 보고 그제서야 가수 이름이 아이콘이란 걸 알게 되었다. 몇 달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자 더 이상 쓸쓸하지 않은, 동요처럼 들리게 된 '사랑을 했다'.
아직 노랫말을 다 몰라 끝 글자만 따라 뭉개며 부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가사를 출력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첫영성체 교리를 받으며 기도문 외우느라 몇 달째 씨름 중인 까꿍이는 출력물을 받아들자마자 계이름까지 순식간에 외워냈다. 역시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그때 즈음 인터넷에 '사랑을 했다 유치원 떼창'이라는 검색어가 오르고 아이들이 쓴 노랫말 사진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입에 완전히 익은 이 노래는 개사의 영역으로 발전했다. "정치를 했다~ 순실이 만나~"를 시작으로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선율을 탔다.
"화장실 갔다 휴지가 없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집으로 왔다 엄마가 없다 우리 신나게 놀자", "방학을 했다 이젠 자유다 우리 늦잠을 자자" 등등 아이들은 쓰라는 일기 대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개사를 하며 배를 잡고 웃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