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도 사용 안한 에어컨에어컨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
이명옥
연립 주택 1층인 우리 집은 공기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바깥보다 더 덥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아들 아이가 선풍기 한 대로 버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했다. 큰마음 먹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현(아들), 에어컨 틀어. 39도라며."
"아직 괜차농."
"어."'아직 괜찮다'는 아들의 답에 난 더 이상 에어컨을 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다. 찜질방 같은 우리 집에서 유난히 더위를 타는 아들이 견디기에 절대 괜찮지 않은 무더위라는 것을.
사실 작년까지 우리 집은 에어컨 자체가 없는 삶을 살았다. 올해는 에어컨이 있기는 있다. 에어컨이 없는 것을 아는 동생이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사용하던 에어컨 한 대를 30만 원 들여 우리 집 안방에 설치해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두려워 에어컨을 켤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래서 그저 벽걸이 장식품 정도로 여기며 여름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들은 이따금 한적한 모퉁이에 자리한 카페에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더위를 식히는 눈치다. 지하철이 시원해서 내리기 싫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유난히 더위를 타는 아들이 더운 집에서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 알기에 살짝 미안해진다.
사실 나도 오가며 흘리는 땀을 빼면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훨씬 더 낫기에 더운 집에 들어오기가 싫을 정도다. 지하철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냉방이 잘 되어 있고 은행, 강연장, 음식점, 카페 등은 대부분 냉방이 잘 되어 있기에 밖에서는 더위를 별로 느낄 수 없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아들이 말했다.
"우리 집은 차라리 겨울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추위는 그럭저럭 견딜만 한데 더위는 정말 참기 힘들어요. 빨리 여름이 지나가고 겨울이 되면 좋겠어요."그 말을 듣고서도 나는 '에어컨을 틀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미의 속마음을 아는 아들은 집에서는 아예 에어컨 사용 자체를 포기한 것 같다. 우리 집에 에어컨이 있기는 한 걸까? 아들에게 차마 꺼내지 못한 내 속마음은 이랬다.
"미안하다. 아들아, 좀 더 더위를 견뎌주렴. 대한문 앞에는 이 찜통 더위에 두 번째 분향소가 차려져 있어. 오늘은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온 몸을 낮추며 가는 오체투지를 한다는구나. 비록 오체투지는 함께 못하지만 피켓이라도 들고 걸으려고 나가보려 한단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을 버텨내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선풍기마저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에너지 약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더위를 잘 견뎌보자."[관련기사 : '극한노동' 전전하던 나, 요즘 대한문으로 출근합니다 http://omn.kr/ry1r]에어컨 대신 더위를 줄여주는 생존 도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