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한 팀 홈학업과 운동 무엇이든 잘했던 팀 홈은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아버지와는 눈빛만으로도 소통할 만큼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정현주
흔히 방송에서 입양인 이야기는 생모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다뤄진다. 성년이 된 입양인이 천신만고 끝에 찾은 생모를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나, 고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뿌리'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26개월이라는 어린 나이에 입양된 팀 홈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그가 생모나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지난 6월 4일 오전 10시, 그가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한남동에 있는 숙소를 찾았다. 한국인 아내와 9살 된 강아지 만두와 함께 기자 일행을 맞이한 그의 첫인상은 온화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옅은 다갈색 머리, 회색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 쌍꺼풀진 커다란 눈……. 한 눈에도 그가 혼혈계 입양인임을 알 수 있었다.
- 입양 과정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어릴 때 보았던 '입양 배경 보고서'에는 생모의 이름과 지문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문이 너무 흐려서 찾을 수가 없었다. 생모는 18개월의 나를 홀트에 데려다 주었고, 1959년 나는 미국 오리건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스웨덴계 부모에게 입양되었다."
- 생부모를 찾고 싶은가?"딸을 낳기 전까지는 궁금했고, 만나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들이 나타나서 먼저 보자고 하기 전까지는 굳이 시간을 들여 찾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혹시 전할 수 있다면 잘 살고 있으니 걱정마시라고, 미국에 입양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혼혈이기 때문에, 당시 한국에서는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래서 미국에 보내준 게 고맙다."
낳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이어지면서 과거 유전자 검사를 했던 에피소드가 화제가 되었다. 그 검사를 하기 전까지 그와 가족들은 막연히 생부가 이탈리아계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입양 당시 그의 이름이 '권토니'였는데, '토니'라는 이름이 이탈리아식이었기 때문이다. 외모도 이탈리아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DNA 검사 결과는 그때까지의 짐작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50% 영국, 37% 한국, 20.5% 일본, 나머지 기타'이 나왔던 것. 여기까지 들으며 생각했다. 왜 유전자 검사를 했을까? 역시 입양인들에게 '생부모'는 채워지지 않는 궁금함과 그리움의 대상인가? 소위 '뿌리찾기'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그만큼 절절한 것일까?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려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다섯 번이나 풍을 맞았다. 그렇게 삶과 죽음을 오가면서, 병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유전적 가능성을 얘기했기 때문에 '유전적 병력(medical history)'을 알아보기 위해 DNA 검사를 했다.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유전자 검사는 생부모에 대한 궁금함과는 관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언론을 통해 심한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에 그의 경우는 어땠는지도 물었다.
팀이 입양된 지역은 99% 백인들만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그가 다닌 학교의 학생 수가 400명이었는데, 그 중에 백인이 아닌 학생은 3명 뿐이었다. 한 명은 흑인이었고, 한 명은 팀 자신, 나머지 한 명은 그와 함께 같은 가정에 입양된 한국인(full Korean) 동생 테미였다.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백인이 아닌 팀의 외모는 몹시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특별한 인종 차별의 경험이 없다. 부모님이 그만큼 그런 차별을 막아주셨다. 또 운동을 잘했기 때문에 팀은 학우들에게 인기가 많기도 해서 더욱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공부나 운동,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잘했다.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경험은 딱 두 번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려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반대했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내가 동양계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대학에 진학할 때 차별은 아니지만, 내가 뭔가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여러 대학에 지원을 했고, 합격했다. 그 중에서 처음 선택한 대학이 시카고 대학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부모님이 백인이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나 역시 백인이라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합격 서류에 '동양계 혼혈'을 뜻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때 그게 신기했다. 나중에 병원에서도 서류에 그렇게 적힌 것을 보기도 했다. 혼혈계이기 때문에 백인에게도 이질적이고, 동양인에게도 이질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인종차별과 같은 시선은 오히려 교포사회 같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