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홀트 복지원에서 원우들과 함께, 정중앙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소년이 스티브 모리슨입양되기 전 6세~14세까지 스티브 모리슨은 홀트 부부가 세운 일산의 홀트복지원에서 자랐다. 나중에 이곳에 방문했을 때, 입양되지 못한 채 이곳에 남았던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스티브는 수없이 물었다. "왜 나는 선택받았고, 이 친구들은 선택받지 못했나?"
정현주
1970년 미국으로 입양된 스티브 모리슨은 현재 미우주항공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1999년 한국입양홍보회(MPAK)를 설립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러 모로 특별한 그의 이력을 접했을 때,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편안한 삶을 누려도 될 그가 굳이 한국 아동들을 위해 입양홍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게 '입양'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6일까지 이메일을 통해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확신에 찬 대답을 보내왔다.
"'입양은 기회'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기회이지요. 새 아버지 어머니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다른 아이들처럼 가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 미래의 성공과 실패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입양은 아동에게 기회를 낳는 일입니다."스티브(한국 이름 최석춘)는 14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묵호. 원가정과는 다섯 살 때 헤어졌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학대로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얼마 후 아버지도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그는 동생(최대천)과 거리를 전전했다.
낮에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고, 밤에는 묵호역 굴다리 밑에서 선잠을 잤다. 그때 굴다리 밑에서 삶은 게를 파시는 아주머니께서 동생을 키우겠다고 데려갔다. 동생만 데려간 이유는 그가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홀로 거리를 헤매던 그는 강원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아픈 다리를 수술할 수 있다는 소식에 서울에 있는 홀트복지원으로 옮겨진다. 다리 때문에 동생과 헤어졌지만 그 다리 때문에 홀트와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스티브 나이 6살 때였다.
수술을 받고 많이 좋아졌지만, 장애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홀트복지원은 그의 삶에 수술보다 더 큰 의미를 던져주게 되었다.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큰 감동을 받는다.
홀트 부부는 누구인가? 1955년 이미 6명의 자녀를 둔 홀트 부부는 한국전쟁 고아들의 참상을 담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것을 계기로 한국 고아 8명을 입양했다. 다음해 3월 아예 한국에 건너온 부부는 서울 세종로에 사무실을 얻어 '홀트씨(氏) 양자회'를 만들었다. 64년에는 사재를 털어 장애인 복지시설인 홀트 일산복지타운을 건립했다. 바로 이곳으로 6살 스티브가 수술을 위해 옮겨졌던 것이다.
남편 해리(당시 59세)가 심장마비로 숨지자 홀트 여사는 소외된 사람을 위한 봉사에 더욱 전념해 모두 7만여 명을 외국 가정에, 1만8000여 명을 국내 가정에 입양시켰다.2000년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홀트 여사는 미국에 있던 집과 토지 모두 한국의 홀트 재단에 기부했다.
14세 때 부모 없는 소년으로 한국을 떠났던 스티브가 부모를 만나 성장하고, 27세의 우주공학자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을 때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어려서 자랐던 홀트 일산 복지타운에서 버서 홀트 여사를 만나며 큰 감동을 받았다. 또 홀트 할아버지 무덤을 찾았을 때의 감격은 헤아릴 길이 없었다. 무덤 앞에서 그는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감사와 감동과 존경과 사랑...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동안 쌓아두었던 마음이 눈물이 되어 봇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또 그곳에서 아직도 입양가지 못한 채 성년이 된 옛 친구들을 만났다. 그나마 정신적으로 장애가 없는 친구들은 사회에 나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18세에 200만 원(당시)만 받고 강제 퇴소를 당해 대부분 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스티브는 그들에 대해 큰 아픔과 미안함을 느꼈다. 그는 수없이 물었다.
"왜 나는 선택받았고 이 친구들은 선택받지 못했나?"홀트 부부에게서 받은 사랑, 그리고 입양되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은 훗날 그가 한국입양홍보회를 설립해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