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정 원림임대정 원림은 16세기 말에 고반 남언기가 조영한 고반원에서 시작된다.
김종길
원림의 의미예부터 <정감록>에선 이 일대를 "서쪽에서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가는 사평천이 있고, 일곱 개의 산이 감싸는 평야 지대로 가히 만인이 살 수 있는 땅"이라고 했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학(鶴)의 형국으로 진산인 봉정산과 인근 일곱 개 산(정산, 운산, 월산, 송산, 화산, 검산, 절산)과 상사마을의 평야를 거느린 길지이다.
임대정이라는 이름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평천과 임하는 곳에 정자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임대정기>에 "드디어 송나라 선비의 '종조임수대여산(終朝臨水對廬山)'의 글귀를 취하여 임대로 이름 하니 그 가운데 동정(動靜)을 정히 체험하기 좋으며 이 즐거움은 속인과 더불어 말하기 어렵다"며 정자 이름을 임대정이라고 한 이유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임대정은 봉정산 기슭에 위치하여 사평천에 임한 것도 있지만 "물가에서 산을 대한다(임수대산 臨水對山)"는 중국 송나라의 염계 주돈이(濂溪 周敦頤, 1017~1073)의 시구를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염계는 말년에 강서성의 여산 아래에 살았다. 여산은 도연명이 귀거래사를 읊으며 은거한 곳이었고, 왕휘지가 글씨를 익힌 곳이었고, 이태백이 은거하여 신선이 되고자 한 곳이었고, 주자가 이곳의 백록동서원에서 후진을 양성했던 명산이다.
염계 또한 여산 아래에 은거하여 성리학의 기틀을 세웠다. 사애는 이러한 유서 깊은 곳에 임대정을 세워 산수를 관조하면서 세속을 잊고 성정을 닦으며, 자연을 벗 삼아 이상적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 임대정 원림은 다음 편에서 계속
▲임대정 원림봄날 임대정은 흐드러진 산수유와 매화로 선경이 따로 없다.
김종길
▲임대정 원림봄날 임대정은 흐드러진 산수유와 매화로 선경이 따로 없다.
김종길
임대정 원림의 구성 |
비 내리는 봄날 임대정에 가보라. 흐드러진 산수유와 매화로 선경이 따로 없다. 정자는 마치 절벽 위에 앉은 새 같다. 사애 민주현이 임대정 원림을 조성할 당시에 임대정은 작은 초옥이었다. <임대정기>에 "약간의 돈을 모아 한 칸 초옥을 만들어 비를 막고 바람을 가리니 멀리서 보면 버섯과 같고 일산과 같으니 사람들이 그 위에서 놀면 높은 수레 위에 앉은 것과 같다"고 적고 있다. 정자 위는 선계이고 연못은 선계의 우주이다. 원림 앞을 흐르는 개울 사평천을 건너면 이미 다른 세상이고, 연못을 건너면 곧 선계이다.
임대정은 예전 '은행대'라고도 불렸다. <임대정기>에 "뒷날 사람들이 전하여 일컫기를 은행대라 했는데 이것은 은행나무로 인하여 이름을 얻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외에도 <임대정기>에 "문밖의 시내 은행나무 가를 산보하면서"나 민주현의 칠언율시에 "은행나무 그늘 아래 작은 정자 새로 지어"라는 글귀를 보면 민주현이 임대정을 조성할 즈음에 계곡가나 원림 등에 은행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대정 원림은 구릉에 위치해 있다. 높이 4m에 달하는 언덕이 자연스레 원림 영역을 둘로 나눈다. 언덕을 사이에 두고 정자가 있는 수륜대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분할 수 있다. 공간은 크게 언덕을 경계로 언덕 위의 상원(上園)과 언덕 아래의 하원(下園)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다시 '사애선생장구지소(沙崖先生杖屨之所)'가 새겨진 표석이 있는 앞뜰(前園), 정자와 연못이 있는 내원(內園), 반달형과 원형의 두 개의 연못이 있는 지원(池園), 봉정산과 사평천, 너른 들판 등이 있는 외원(外園)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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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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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가린 정자, 가는 길 한번 드라마틱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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