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의 이유>(저자 선대식) 표지.
북콤마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가 쓴 <실명의 이유>는 바로 이런 의문에 답을 준다. 선 기자는 메탄올 실명 사건을 보다 명확하게 조명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반월·시화공단의 파견노동 시장에 뛰어든다.
선 기자가 뛰어든 파견노동 시장은 그야말로 법의 사각지대다. 노동자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사람은 오로지 한 개의 노동 단위로서만 가치를 갖는다. 이런 현실은 이랜드, 기륭전자, KTX 여승무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잔뼈'가 굵은 기자마저 움츠러들게 만든다.
"안산역이 있는 원곡동에는 수많은 파견업체가 있다. 반월·시화공단에 제조업체가 다수인 걸 감안하면 이곳 파견업체들은 대부분 불법 파견으로 돈을 벌고 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실처럼 파견업체 입구에는 '제조업 파견노동자 모집' 전단이 붙어 있다. 원곡동은 대낮에도 불법 천국이다. 이곳에서 국가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 본문 73쪽
"공장의 환경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환풍기는 없었다. 단지 공장에 몇 안 되는 창문을 열고 선풍기 한 대를 바깥을 향해 틀어 놓았다. 아직 겨울 끝자락인데 나를 비롯한 파견노동자들은 난방도 안 되는 공장에서 몸을 움츠린 채 일했다. (중략) 앞서 언급한 뉴스 속의 A와 나는 일주일 간격을 두고 똑같은 일을 했다. 유일한 차이는 내가 일한 공장에서는 절삭유를 사용했고, 그녀가 일한 공장에서는 메탄올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조그마한 차이는 큰 결과로 이어졌다. 그녀는 시력을 잃고 뇌손상을 입었다. 나는 멀쩡했다. 내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마음을 쓸어내렸다. 나는 곧 메탄올을 내게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 - 본문 82~83쪽
글로만 읽어도 손이 떨려온다. 만약 MBC <PD수첩>이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같은 공중파 방송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으로 실상이 알려졌다면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메탄올 중독으로 빛을 잃은 노동자들이 실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을 일깨운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당시 언론 보도를 살펴 보자. 앞서 많은 언론들이 메탄올 실명 사건을 크게 다뤘다고 적었다. 특히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언론은 삼성전자와 하청업체들의 먹이사슬에 주목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진짜'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보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무뚝뚝하게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 언론의 한계일 수도 있다. 이 같은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언론 보도는 인간적인 요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선대식 기자는 위장취업을 불사하는가 하면, 실명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성공한다. 이 책 <실명의 이유>가 다른 언론 보도에 비할 수 없는 이유다.
실명 노동자는 우리의 '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