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인 전정훈씨가 시각장애 2급으로서 도움을 받기 위해 인천시청을 찾았지만,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민석기
C의 경우C는 아버지를 산재 사고로 일찍 떠나보내고 어렸을 때부터 동생과 함께 살며, 많은 일을 했다. 현재에도 동생과 함께 인천에 거주하고 있지만 동생은 회사 때문에 늘 바쁘다. 다행히 어렴풋이 보이는 눈으로 동생이 사다놓은 반찬을 가지고 식사는 할 수 있었다. 또 익숙한 길은 혼자 다닐 수 있지만 신호등이 있는 길은 불빛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 다니기가 힘들었다. 불시에 다가오는 차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C가 오랫동안 다닌 교회, 유일한 취미인 라디오 듣기를 빼고는 주로 집에서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C는 늘 필요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잘 모르기 때문에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C는 자신의 꿈이 제빵사이며, 신호등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시각장애가 있는 본인만 건너는 신호를 보지 못해 가만히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까 봐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기를 표현하는데 서투를 뿐 사실 아주 수다쟁이다.
C의 경우 인천에 위치한 시각장애인복지관과 연락이 닿아 점자 교육, 직업 훈련 등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평소 걷기를 좋아했던 그가 처음 필요했던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신호등의 변화를 알려주는 음성 신호기였다. 하지만 모든 신호등에 음성 신호안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아직도 자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지 못하다.
지금 C는 인천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을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배우고 싶었던 제빵 교육도, 운동도, 보행 교육도 받고 있다. 종종 전화를 할 때 불평을 하곤 하지만 나는 그가 얼마 전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홀로 있었을 때보다는 더 좋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혹은 다른 장소들에서 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시력을 잃기 전보다 더 쾌활해지기를 바란다.
D의 걱정D는 메탄올 노동자 중 유일하게 기혼자이며, 남편, 딸,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D의 경우 사고로 인해 걷는데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시력의 경우 사고를 입었을 당시보다 좋아졌지만 큰 어려움은 정신적인 부분에서 발생했다.
D는 재해 이후에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다. 재해도 재해지만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비관과 자신을 그렇게 만든 회사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상황에 대한 분노와 상심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창기에 재활에 있어 정신적인 부분에 주목하지 못했다. D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몇 번의 통화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고는 단순히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용기를 낸 사람이었다.
함께 근무하다 사고를 당한 B, E를 늘 격려했다. 또 다른 피해자를 찾고, 더 많은 힘을 주기 위해 방송이나 기자회견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용기를 낼 때마다 사회는 그의 기대에 늘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정부와 원청회사인 삼성과 엘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D의 생활과 신체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 결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화통화를 할 때 D는 늘 몸이 좋지 않아 기존에 다니던 근로자건강센터도 잘 다니지 못하고 외출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는 같이 근무하다 다친 친구와 새롭게 만난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의 용기가 사회의 더 많은 부분을 바꿔, 그의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를 바란다.
E의 불행과 다행E의 경우 메탄올 노동자 중 아직까지 병원에 있는 유일한 노동자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고 있고 그 지역의 근로복지공단 산재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직까지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E의 경우 시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후유 장애를 겪고 있고 여전히 치료를 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직접 통화가 어려워 주로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알아보았다. E 아버지의 경우 부지런히 정보를 모아, 여러 제도 등에 정보가 밝으신 편이어서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찾고 있었다.
E의 경우 산재 전문 병원에 있기 때문에 치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활프로그램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산재병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주로 지체장애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E와 같은 시각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E를 담당하는 직원이 진희를 위해 함께 점자를 배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E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핸드폰이었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있다 보니 너무나 무료한데, TV 등은 함께 입원한 다른 분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하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어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마땅히 없었다.
문제는 핸드폰이 있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E가 스마트폰의 정확한 위치를 터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스마트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자체적으로 탑재되어 있고 여러 핸드폰 중 아이폰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난해 4~6월 노동건강연대와 선대식 기자는 메탄올 중독 실명 노동자 6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음 스토리펀딩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를 진행해 후원금 1745만 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아이폰을 구매해 보내드릴 수 있었다.
이후 아버지에게 E가 핸드폰 때문에 2kg이나 감량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병원에서 무료했던 E가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익히는데 식사도 잊은 채 집중하면서 체중도 빠진 것이다. 다른 분들과 달리 혼자 멀리 떨어져있는 E는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다른 메탄올 피해 노동자와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의 몸이 얼른 좋아져 종종 보내오는 그의 카카오톡이 좀 더 자주 오길 기대한다.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다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가 새로운 삶을 찾아가기 위한 용기를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도 먼저 나서 그들이 무엇을 하도록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어디에서도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움직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부양해 줄 가족이 없거나 설령 가족이 있어도 그 가족이 직장을 다니지 않거나,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지만 정보를 얻고 무엇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한순간에 시각손상이라는,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지만 그 과정을 책임지는 몫은 산재노동자 본인과 가족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강릉에서의 환한 웃음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더 이상 노동자들이 다치질 않길 그리고 그들이 다친 후에도 좀 더 용기 내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실명의 이유 - 휴대폰 만들다 눈먼 청년들 이야기
선대식 지음,
북콤마,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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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여성, 청소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을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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