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수선공사는 파란색 천막 안에서 이루어진다. 얼핏 보기에 어수선해보일 수 있으나 저 천막 경계 넘어 현장 안에서는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중이다. 그 역사란 무엇이냐. 바로 지난 80여 년의 세월이 해체, 조합, 재편성을 거쳐 새로운 공간 탄생의 역사다. 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우섭
며칠에 한 번씩 철거 현장을 들렀다. 처음 본 철거 현장의 충격은 몇 번 가보니 언제 그랬냐 싶었다. 일하는 분들께 방해가 될 듯하여 모두 퇴근하고 난 뒤 들르곤 했다. 현장은 매일매일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집 안팎은 언제나 더할 수 없이 정결했다. 늘 물청소까지 말끔히 되어 있었다. 모든 작업의 끝은 바로 정리정돈이었다.
단 하나도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매일매일 구들장의 돌이며, 서까래 하나까지 차곡차곡 집 바깥으로 들려 나왔다. 이 집의 돌과 나무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목수님의 현장 원칙 중 하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철거 현장 주변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 집들의 흔적들을 보며 나는 진실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책상에서, 입으로만 이야기하는 서생들의 손끝에서는 나올 수 없는 현장의 아름다움이었다. 손으로, 어깨로, 허리로, 두 다리로 일하는 분들의 노동의 엄정함이 깍듯하게 쌓아놓은 돌들과 기와에 배어 있었다. 목수님은 바닥을 다 드러낸 집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집은 흙이 참 좋습니다. 기름진 흙 위에 지어진 집이라 사시기에도 좋겠습니다." 내가 원하던 답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 집의 나무와 돌이 참 좋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는 마치 '별 특징 없게 생긴 사람에게 성격 좋다'고 하는 것과 같다며 웃어 넘겼다. 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목수님이 좋다고 하신 흙을 손으로 쥐어보곤 했다. 그러고 보니 이 흙은 대지 저 깊은 곳의 기운과 연결된 것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비로소 땅 위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내가 딛고 설 땅의 흙이 좋다는 말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뒤늦게 깨닫게 된 셈이다. 철거 현장의 충격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이 좋은 땅에 꾸릴 작은 화단에 어떤 꽃나무를 심을까 하는 궁리로 머릿속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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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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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만 남기고 싹 다 버린다, 충격적인 한옥 철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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