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집주인 어르신의 아버님이 쓰셨다는 아주 오래된 장롱이다. 역사는 개인의 삶에도 흐른다.
황우섭
내가 사는 이곳이 예전에는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살았으면 또 모를까, 집값에 맞춰 살기 편한 곳을 찾아 이사를 온 곳에서 옛모습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다.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로 이사 와서는 더 그랬다. 편의와 효용을 극대화한 신도시는 직장의 출퇴근과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위한 도구적 역할에 매우 충실했다.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도로 위에서 잠시 정신을 놓으면 운전대를 잡고 이 길 저 길을 뱅뱅 돌아다녀야 한다.
블럭마다의 모습이 똑같아 지금 서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혼동이 될 때가 많았다. 그것 말고 이곳에서는 일상의 불편함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이런 현재의 편리함에 만족하며 살았을 뿐 옛 자취를 찾아보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혜화동 인근에 살 곳을 마련하고 나니 내가 살아갈 집과 동네의 옛 모습이 궁금해졌다. 이사갈 집에서 가까운 병원과 관공서, 도서관, 맛있는 밥집, 미장원 등 편의시설 등을 찾아보면 끝이었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창경궁과 창덕궁이, 성균관이, 혜화문이, 한양도성이 모두 다 '우리 동네'의 경계 안에 들어와 있으니 더욱 그랬다.
마침 그무렵 나와준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서울편>을 읽는 재미도 각별했다.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책 중에 창덕궁, 창경궁을 다룬 내용들도 새삼스럽게 들춰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 서울의 옛지도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내가 서 있을 서울이라는 땅에 배어 있는 시간의 지층이 한결 두텁게 느껴진다. 오래 되었다고 해봐야 몇십 년 세월에 익숙한 내게 몇백 년의 시간이란 말할 수 없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땅에 내가 발을 딛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 표표히 흐르는 역사의 한귀퉁이에 발을 딛고, 일상을 누린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경이롭게 느껴졌다.
역사란 바라보는 대상일 뿐,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조선시대 역사,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오늘의 나의 접점을 떠올리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 역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혜화동 인근에 집을 마련했다고 하자, 현대사를 공부하신 선생님은 3.1독립운동 당시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해주셨다. 또 어떤 분은 조선시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풍류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이곳에서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녔다는 선생님은 예전 캠퍼스 풍경부터 1960년대 술 마시고 돌아다녔던 뒷골목 정취를 풀어놓으시며 한참을 이야기에 취해 계셨다.
그분들 역시 혜화동에 흘렀던 시간, 당신들과 함께 흐르던 그 시간, 그리고 지금, 오늘 삶의 무대로 여전히 존재하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쌓아가고 계신다. 평생 종로구민이셨던 이전 집주인 어르신께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쌓였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아주 오래된 한옥 한 채를 만났고, 이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내게 존경하는 어른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혜화동이 서울 동쪽 작은 문인 혜화문(惠化門)에서 나온 이름일테지요. 동소문의 본래 이름은 넓을 홍(弘)자 쓰는 홍화문(弘化門)이었답니다. 창경궁이 지어지고 그 정문을 홍화로 쓰는 바람에 혜화로 고쳤다지요. 그곳에서 시작하는 일이, 작지만 널리 퍼지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조선 시대부터 있던 혜화문은 일제 시대 헐렸다. 지금 있는 건 1990년대 새로 지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오가는 길, 일상의 풍경 속에 역사가 흐르고 있고, 이름 자 안에 새겨진 유래에 우리 역사의 간난신고가 배어 있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직장 가까운 곳을 좇아 살 곳을 찾아다녔던 내게도 물론 나의 역사는 존재했으며, 지금도 흐르고 있다. 하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몇백 년 전부터 같은 자리에 오롯이 들어앉은 혜화동에 흐르는 이 역사에 발 한 쪽 들이밀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절로 각별해진다.
이사를 오려면 아직 멀었다. 그때까지 집은 늘 비어 있다. 간혹 빈 집의 문을 열고 가만히 들어가 앉아 있다 나와 동네를 하릴없이 돌아다니곤 했다. 이 집에 새로 쌓일 역사는 무엇이 될 것이며, 나의 역사는 또 어떻게 흐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