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를 벗어날 즈음에 있는 갈래길. 왼쪽 루트 색깔을 지워버렸다. 가지 말라는 뜻인가.
차노휘
두 길 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다음 목적지로 삼는 사리아(Sarria)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오른쪽이 6.5km 단축된다. 내가 가지고 온 안내서에는 좀 돌아가더라도 왼쪽 길을 선택하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왼쪽 길, 돌아가는 길 중간 지점에 있는 사모스(Samos)에서 자고 싶었다.
사모스에는 6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이 있다. 그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넓은 부지에 세워진, 서구 세계를 통틀어 가장 역사 깊은 수도원이다. 사모스로 이어지는 길은 오르비오 강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흙길이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보고 싶은 곳은 봐야 했다.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하지만 발목 통증은 나를 변덕쟁이로 만들었다. 이렇게 아픈데, 돌아가는 여유를 즐긴다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통증이 심해지면 완주하기 전에 멈춰버릴 것 같은 불안도 작용했다. 갈팡질팡 하는 마음이 싫어서, 10km를 걷는 동안 최종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런 갈등은, 트리아카스텔라 바에서 콜라 한 잔 시켜놓고 발을 쉴 때에야 끝났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 주경 때문이었다.
주경은 이번이 네 번째 순례길이었다. 북적대는 것이 싫어 메인 포인트를 지나치거나 못 미처 알베르게를 정한다고 했다. 알베르게 고르는 기준이 나와 같아서 일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사모스는 겨울에 들러본 곳이지만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단다. 그도 그곳을 오늘 최종 목적지로 정했단다. 무엇보다 그를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한국인과 달리 서두르지 않는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