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브레이로를 10분 남겨 둔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
차노휘
나는 아예 배낭과 신발을 벗고 그 옆에 앉았다. 쉴 곳을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다. 산 속에서 듣는 생음악이라니, 얼마나 상쾌한가. 단체객을 먼저 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단체객도 주춤하더니 몇은 동전을 모자에 넣고 갔다. 그들이 사라진 그 길은 고요로 채워졌다. 아침 햇살은 먼 산등성이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눈앞에 펼쳐진 계곡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나는 제일 편한 자세로 앉아 음악 한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나는 혼자였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남자의 음성은 햇별 속에서 반짝거리면서 빛났다. 음악만이 고요한 산야에 울러 퍼졌다. 한곡이 끝나고 약간의 틈이 있었지만 남자는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나는 음악이 끝난 그 틈을 즐기며 한곡만 듣고 일어나려는 마음을 접었다. 마침내 노래가 시작되었고 끝났다. 나는 신발을 신고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 뒤집어 놓은 모자 속에 1유로를 넣었다.
그곳에서 십분을 걸어 오세브레이로(O'cebreiro)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왜 오세브레이로에서 하룻밤 묵으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래된 성당 아래로 순례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이 있었다. 경치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곳은 순례길(까미노 데 산티아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장소이기도 했다.
오세브레이로의 기적(Santo Milagro) 오세브레이로에는 현존하는 성당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있다.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Real)은 연대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세브레이로의 기적(Santo Milagro)'이라고 불리는 기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기적은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치는 어느 날에 일어났다. 독실하나 가난한 소작농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눈보라 속을 헤치면서 주일을 지키려고 온다. 수도사는 신심이 그리 깊지 않았다. 험한 날씨에 목숨까지 걸고 올라온 소작농에게 멸시의 눈초리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수도사가 성찬식을 행하는 순간, 면병은 그리스도의 살로 바뀌었고,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었다. 성당 안에 있는 마리아상도 이 기적적인 광경에 머리를 숙였다.
그 예배당은 농부와, 그 기적으로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된 수도사가 세웠다. 그들의 이름은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웃해 있는 마을 교회 묘지에 이름 없는 비석 두 개로 남아있을 뿐이다. 어떤 것이 수도사의 무덤이고 농부의 것인지는 구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