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안) 작아>
풀빛
거인과 분홍 꼬맹이가 등장하자마자 싸우던 두 무리는 상대방이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며, 또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는 크기의 상대성을 수용한다. 조금 전까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운 걸 지켜본 독자는 아직 씩씩 거리는 감정이 남아 있는데, 이에 아랑곳 않고 배고프다며 정답게 밥을 먹으러 간다. 두 무리가 화면에서 사라진 뒤 분홍 꼬맹이가 거인을 올려다 본다.
"너, 털 진짜 많다."파랑이가 작은 건지 주황이가 큰 건지 대립된 주장이 자아내는 갈등을 주제로 다룬 <넌 (안) 작아>는 그림도, 이야기도 단순하다. 배경 없이 캐릭터만 나와서 독자는 파랑이와 주황이 표정에 집중할 수 있다. 글도 군더더기 없이 대화만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독자가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그림과 글을 단순화했다.
독자는 책을 보면서 파랑이, 주황이와 함께 '작다니까, 크다니까'를 외치며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거란 기대에 점점 흥분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 커다란 거인과 분홍 꼬맹이가 나타나는 장면에서 '아, 크기는 상대적이란 걸 말하려 했던 거구나'라는 결말을 예상하며 제목이 왜 '넌 (안) 작아'였는지 이해한다.
긴장의 끈을 놓고 책장을 넘기니 파랑이와 주황이는 예상대로 "넌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구나"라고 말하며 퇴장한다. 다만, 마지막에 분홍 꼬맹이가 거인을 보고 하는 말이 "너 정말 크다"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너 털 진짜 많다."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작가는 파랑이와 주황이를 그토록 싸우게 했나보다. '작다, 크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흑백 논리에 빠지면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크기의 상대성도 결국 크기 문제다. "털 많다"라는 한 마디는 크기가 아닌 아예 다른 관점을 제공하며 흑백논리를 깨뜨린다. '상대성, 흑백논리, 다양한 관점'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듣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다. 진부하지만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는 가치관을 '넌 (안) 작아'는 유머있게 표현했다.
서로 다른 관점을 실천하는 건 그림책처럼 쉽고 재미있게 되지 않는다.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 상황에서도 만삭 배를 유지하는 동생에 대한 질타를 담아 밥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상황이 재미있어서 한바탕 농담이 오갔다.
"차라리 밥을 많이 주고 간식을 먹지 말라고 그래. 평소에 늘 적게 담다보니 많이 담는다고 해도 적게 담기는 거 같아. 그냥 사람이 이렇게 먹어도 되나 싶을 만큼 담으면 돼."올케네 식구가 소식을 해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다 같이 웃자고 이야기를 건냈다. 어떠한 원망도 비난도 감정도 넣지 않았다.
"제가 잘 못 먹이고 밥을 너무 조금 줘서 이 사람이 힘든가 봐요."올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아차, 싶었다. 우리에겐 농담인 일이 올케에겐 아닐 수 있었다. 누가 많이 먹는 거고 적게 먹는 거냐 양에 대한 기준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남동생의 다이어트다. 그가 빼면 모든 논란은 사라진다. 올해는 제발 배를 만삭인 배를 출산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넌 (안) 작아
크리스토퍼 와이엔트 그림, 강소연 글, 김경연,
풀빛,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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