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네 길거리에 있는 스탬프. 바구니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비스킷과 사탕, 장미가 있다. 여권 스탬프에 도장도 찍고 과자와 장미까지 선물 받았다.
차노휘
순례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은 몇 가지 더 있었다.
발베르데(Valverde)를 지났을 때였을까. 길거리에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 찍는 곳이 있었다. 한쪽에는 메모를 남길 수 있는 공책이, 그 옆 바구니에는 비스킷과 사탕과 장미꽃이 있었다. 비가 올 듯해 배낭 커버를 씌웠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배낭에서 순례자 여권을 꺼내 스탬프를 찍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스페인 노인이 내게 비스킷과 장미를 주었다. 다시 길을 나서려고 하자 그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기꺼이 그와 사진을 찍었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공립 알베르게 접수를 마치고 발바닥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 때, 전에 데미안이 말했던 한국인 중년 남자들이 들어왔다. 그동안 걸으면서 서너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같은 알베르게에 묵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이 파스타를 요리해서 늦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와인도 곁들였다. 나는 그 보답으로 설거지를 했다.
이곳 알베르게에 한국인 아홉 명이 머물고 있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네 명이 한 조가 된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표정 하나 없었다(뒤에 알게 된 사실은 레온 알베르게 4인실 옆방을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묵념하듯 아는 척을 했지만 도저히 말 걸 여유를 주지 않았다. 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국민을 경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류된 길 위에서의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보류' 됐을 뿐이다. 조만간 이들도 마음의 문을 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순례길이었다.
나는 다음날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중년 남자들이 2층 침대를 배정 받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힘들어서 다른 사설 알베르게로 옮긴 것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보다 걸음이 느려서 누구보다 더 일찍 출발해야 하는 나는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잠시 모든 것을 소등해도 되었다. 다음날을 '순례길 위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