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타나스에 있는 Bar 주인(오른쪽 남자)
차노휘
드디어 예약한 시간인 7시가 다가왔다. 바 주인은 미리 예약한 사람 22명을 위해서 야외에 '빅' 테이블을 준비하고는 테이블보까지 깔끔하게 깔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물과 유리병에 담긴 와인이 놓여 있었다.
양상추에 토마토를 썰어 넣은 야채 샐러드가 곧이어 나왔다. 주인이자 주방장인 남자가 거대한 프라이팬을 들고 왔다. 식사를 기다리던 순례자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프라이팬에 우리식으로 말하면 해물 볶음밥이 납작하게 눌러 있었다. 해물과 쌀을 넣고 볶은 빠에야(Paella)였다.
온타나스와 인접한 곳에 발렌시아가 있다. 그곳은 쌀 곡창지대다. 오래전, 이곳 농부들은 일을 하면서 새참으로 주위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뭔가를 만들어 먹었다. 쌀을 기본으로 즉석에서 잡은 물고기나 달팽이를 넣어 볶았다. 그것이 발달하여 지금의 빠에야가 됐다. 큰 프라이팬은 신에게 봉헌하는 제물을 담는 쟁반을 뜻한다고 한다.
빠에야가 본식이었다. 주인이 과장된 몸짓으로 순례자들 접시에 일일이 프라이팬에 있는 빠에야를 덜어주었다. 그 의식(?)이 끝나자 야외테이블에 둘러앉은 각국 순례자들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한술 떠서 씹었다. 쌀은 설익었고 해물로 몇 개 나오지 않은 홍합과 조개는 냉동식품이었다. 알도 작을 뿐만 아니라 알맹이가 빠진 껍질만 포크에 딸려나왔다. 잘게 깨진 조개껍질이 입안에서 서걱거렸다.
갑자기 공립 알베르게 빠에야 맛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뒤늦게 온 순례자가 그가 묵은 곳은 6유로인데, 저녁 식사로 빠에야가 공짜로 나왔다고 했다. 우리는 와인을 더 마셔야 본전을 찾을 수 있다면서 의기투합했다. 와인도 썩,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제대로 된 와인 병에 담기지 않은 와인은 잔술을 섞어 통에 넣은 다음 다시 따라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쩐지 와인 맛이 거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다 있었다. 하지만 주인 매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빠에야를 다 먹을 즈음 주인이 테이블 한가운데 앉더니 자신의 바 역사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좌석을 차례대로 훑어보던 그는 심각한 목소리로 전부 영어는 하실 줄 아시니 영어로 설명하겠다고 운을 뗀 뒤,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이번에는 아내를 옆에 앉혔다. 이야기 제2부인 그들의 러브스토리였다. 연신 아내의 팔뚝을 쓰다듬으면서 눈시울까지 붉혔다. 이야기 요지는 산티아고 순례를 하다가 사랑에 빠져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거였다.
미리 공립 알베르게 직원의 비난을 듣고 온 뒤라(그녀는 그를 사기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아니, 음식 맛이 엉망이라 나는 그 부부의 언행이 장삿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순례자가 가면 '내일'의 순례자에게도 똑같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테이블에 둘러있던 사람들은 감동에 찬 박수를 쳤다. 박수를 받은 주인은 답례로 노래를 했다. 신나는 스페인 노래였다. 성량이 풍부해서 맞은편 바는 물론 건물이 몰려 있는 거리를 온통 흔들었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번에는 나라별로 대표가 한 곡씩 노래를 부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모두들 수줍어 했지만 싫다고 하지는 않았다. 잘 부르든 그렇지 않든 대표 한 사람이 노래를 불렀다.
그때였다. 맞은편 바에서 살사댄스를 추는 커플이 보인 것이. 8시 퇴근이라는 그 여직원도 육중한 몸을 흔들면서 끼어들었다. 음악 소리가 노랫소리를 덮쳤다. 와인을 하나 더(공짜로) 주문한 우리는 맞은편에서 벌어진 춤판을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주인, 동네 사람들이 미워할 만하다고, 장사를 아주 잘하시는 분이라고, 주인장 설이 5유로짜리는 더 되겠다고.
바 주인장의 매력경쟁하는 바의 신경전은 되레 열기를 보태줬다. 손님들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축제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나는 그 분위기에서 살짝 빠져나와 침대로 향했다. 온타나스 공립 알베르게는 성당이 내려다 보이는 맞은편에 있다. 침대가 있는 2층 창문에서 보면 바로 성당이 보인다. 붉은 노을에 붉어가는 성당 첨탑을 보며 일찍 잠들었다. 그리고 종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3시부터 종소리가 울렸다. 성당 아래 숙소라 그 소리도 컸을 뿐만 아니라 귓속에서 오랫동안 진동했다. 3시 30분은 종 한 번, 4시는 네 번, 4시 30분에는 한 번, 5시는 다섯 번... 나는 30분마다 눈을 떴다. 그러다가 떴다 감았다,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코 고는 소리는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난데없는 종소리는 알람 소리처럼 대책이 없었다. 잠이 달아난 몸은 종소리를 세면서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