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km를 걷고 있는 네델란드 출신 마틴. 저녁 식사를 하고 오니 알베르게 뒤뜰 풀장 근처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차노휘
그는 말이 많았다. 끊임없이 사람을 웃기려고 노력했다. 노래도 부르고 성주와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중 제일 우리를 기쁘게 했던 것은 조금만 더 가면 맥줏집이 있다는 말이었다. 안내 책자에는 이 길이 끝날 때까지 없다고 나와 있다고 하니 그것은 오래전 이야기이고 몇 개월 전에 나온 안내서에는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늘에서 잠깐 쉬고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면 남은 거리는 달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맥줏집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힘을 얻었다.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 길을 왜 걷느냐고.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이 길을 걸으면 혼자라도 즐겁단다. 겸사 아름다운 경치도 볼 수 있단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는 야인이었다. 유쾌한 야인.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왜 밖에서 잤냐고 또 물었다. 그러자 그는 코 고는 흉내를 내며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와 이야기하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위트 있는 말뿐만 아니라 제스처도 풍부했다. 한참을 웃다 보니 상당히 걸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길가 쉼터를 발견했다. 이미 쉬고 있는 순례자 세 명이 있었다. 하지만 쉼터에는 맥줏집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는 그에게 동시에 물었다.
"마틴, 맥줏집은?" 마틴은 앞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을 가리켰다.
"저들이 다 마셔버렸어."그때야 우리는 마틴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화를 내기보다는 그냥 웃었다. 마을을 2km를 남겨둔 지점이었고 조금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었다. 앞서 쉬고 있던 순례자들이 일어섰다. 마틴은 심각하게 우리를 보며 말했다.
"저 남자야, 저 남자. 밤새 코를 골아서 나를 밖으로 내쫓은 이가." 그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해서 나는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발설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코 고는 당사자는 잠을 푹 자서 걸음도 빠르군. 다음 알베르게에서 저 이와 같은 방을 사용한다면 나는 다음 마을까지 걸어갈 거야."우리는 또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그가 말하는 이탈리안은 며칠 전부터 빈번하게 마주쳐서 인사하는 사이였다. 큰 키에 운동을 많이 한 듯 다부진 몸매에 늘 밝은색 옷만 입어서 긍정적으로 보였던 인물이었다. 외모와 달리 그가 코를 고는 주범이었다니. 마틴도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방을 사용했다. 나도 코 고는 소리에 설핏 눈을 떴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들어 버렸다.
이제는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2km 거리를 걸었다. 계속 대화하다 보니 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는 4월 8일부터 네덜란드 수도에서 걷기 시작해 1800km를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 1800km라니!
우리는 다 같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고작 800km 거리 완주를 위해 걷고 있는 지금, 그 앞에서 힘들다고 투정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야인에 기인이자, 귀인이었다. 야콥의 거짓말까지 할 수 있는 그를 우리는 용서하기로 했다.
2km를 걷는 동안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낮은 둔덕을 지나자 알베르게가 보였다. 나는 마틴을 위해 빌었다. 오늘 밤 저 '기인'을 밖으로 쫓아낼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말이다.
알베르게는 훌륭했다. 고작 5유로 주고 묵은 알베르게에 풀장이 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는 프랑스인 데미안이 합류해서 유쾌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유쾌함 속에서도 고질병처럼 도사리는 걱정이 있었다. 왼쪽 발바닥에 새로 물집이 잡힌 것이다. 사람하고는 빨리 적응 하는데 내 발은 왜 자꾸 까탈을 부릴까.
자면서 물집 터뜨린 발바닥이 자꾸 신경 쓰여 일어났다. 자정 지나 화장실을 가는데 열린 창문으로 비바람이 들이쳤다. 길 떠날 때는 날씨가 얌전했으면 싶었다. 젖게 될 발이 걱정되었다. 침대에 눕자 스무 명의 순례자들이 새근거리는 소리가 공중에 떠다녔다. 무사한 하루를 보내고 달콤한 꿈속 여행을 하는 소리였다. 나 또한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나른한 졸음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헨리 밀러의 말을 중얼거렸다.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에라도 삶에는 의미가 주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