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드는 햇살이 시간에 따라 점점 흘러간다.
wooseop hwang
이 집을 손에 쥐겠노라고 선택한 순간부터 은행과 국가의 부동산 정책과 건축법과 낯선 세계의 이해불가한 용어가 내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것은 대부분 내가 결정하고 풀어야 할 고난이도의 방정식으로 등장할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맑은 정신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1936년 6월부터 종로구 혜화동 지금 그 자리에서 한 일가의 생로병사를 지켜보던 집 한 채의 대문 열쇠를 받아들었다.
열쇠를 받아들고 며칠 뒤. 살던 분들이 이사를 가시고 집은 이제 비어 있었다. 받아든 열쇠로,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부동산에서 '부동산종합정보'를 출력해줬다. 그 문서에 의하면 이 집의 시간은 1936년 6월 2일부터다.
내게 열쇠를 건넨 어르신은 이 집에서 태어나 자라,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키우셨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녀들은 장성하여 분가 독립하고, 2016년 겨울, 100세를 훌쩍 넘기신, 역시 이 집에서 젊은 시절 어르신을 낳고 키우신 부친의 마지막을 지켜보셨다.
아내분은 오래전 먼저 떠나셨고, 오래된 집에서 혼자 사는 것이 고단하다는 것이 집을 내놓으신 이유셨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녀들 중 누구 하나라도 이 집을 고쳐 살았으면 하시는 듯도 했다. 다들 고개를 가로젓는다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어르신은 이 댁에서 잘 살아오셨노라고, 이사 온 뒤 잘 살기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쪽마루에 가만히 앉아 빈 마당과 작은 집 구석구석을 바라보았다. 이 집은 곧 1936년 지어진 이래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그 변화의 주체이자 결정권을 가진 나는 이 집에 쌓인 시간을 존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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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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