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마을 벽화재개발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마을이 도시 재생 벽화 프로젝트 덕분에 살아 남았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물 벽화마을이 됐다.
홍윤호
벽화마을의 원조, 동피랑 벽화마을이 생긴 이유 흔히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미항으로 첫 손 꼽는 곳. 푸른 바다와 오밀조밀한 해안, 구석구석 바다 위로 솟아올라 빈틈없이 바다 사이를 채우는 숱한 섬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곳, 바로 경남 통영시이다.
봄이 되면 통영시는 온화한 바람이 불며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따뜻한 고장이 되며, 제철 살 오른 봄 도다리에 향이 강한 햇쑥을 넣어 끓여낸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는 고장이 된다. 유달리 햇빛이 강렬하여 봄 햇살에 온몸이 포근해지는 고장이기도 하다. 봄맞이 바다여행으로 이만한 항구도시가 드물다.
이 통영항을 바로 남쪽으로 내려다보는 작은 언덕 위 동피랑 벽화마을이 요즘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아진 벽화마을의 원조이다. '피랑'이 절벽이나 벼랑을 의미하는 말로, 동피랑은 동쪽 벼랑을 의미한다. 본래 조선시대 통영성을 방어하던 동포루가 있던 곳이다.
'원조' 벽화마을이다 보니 이후에 생긴 수많은 다채로운 벽화마을보다 오히려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 "엥? 이게 다야?"라는 서울 말씨가 들려오기도 하니 말이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다 보니, 특히 서울, 경기권 젊은층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띌 정도로 전국구의 명소라 동피랑에서는 경상도 말보다 서울 말씨가 더 많이 들려온다. 무슨 관광특구 같은 느낌이다.
본래 통영시는 이 언덕의 낡은 집들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려 하였다. 그런데 2007년 한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 전국 벽화 공모전'을 열었고, 여기에 호응하여 일반 학생들과 미대 재학생들, 개인 등이 참가하여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이 유명해지면서 방문객들이 많아지자 결국 마을이 보존되고, 통영시는 마을 꼭대기의 집 세 채만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하였다.
어느 도시에나 있었던 철거 직전의 언덕 위 낡은 마을을, 벽화를 통해 재생한 첫 번째 사례가 된 것이다. 이후로 전국 각지에는 이러한 벽화마을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서, 지금은 특수성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저 오래 되면 다 부수고 다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개발 관념을 벗어나, 리모델링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발상만은 우리의 문화 환경에 훌륭한 모범 사례로 남게 되어 의미가 깊다.
그 첫 사례가 하필이면 통영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남해안에서 첫손에 드는 미항에, 수많은 문화인과 예술인을 배출한 예향(통영 사람들은 인구 비례로 가장 많은 유명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고장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문제는 요즘엔 그렇지 않다는 거다), 통영에서 탄생한 충무김밥과 꿀빵, 통영다찌, 도다리쑥국 등 다섯 손가락에 꼽기도 어려운 숱한 창의적 음식 문화들, 넉넉한 마음과 여유를 가진 통영 사람 특유의 기질이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 환경이 창출된 것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