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흑매 붉은색 홍매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매화나무이다. 각황전 뒤편에서 바라본 모습
홍윤호
고유의 이름을 지닌 매화나무들 이 땅에서 400년 이상 온갖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꿋꿋하게 생존을 이어온 매화나무들에는 저마다의 애칭이 있다. 경남 산청 산천재 앞의 매화나무는 남명매, 산청 단속사지의 매화나무는 정당매, 경남 양산 통도사의 매화나무는 자장매,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매화나무는 도산매, 전남 장성 백양사의 매화나무는 고불매, 전남 순천 선암사의 매화나무는 선암매, 전남 순천 금둔사 매화나무는 납월매로 불리는데, 이외에도 여럿 있다.
한 그루 혹은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가 고유명사처럼 불리며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이 특별한 매화나무들을 해마다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광양 청매실농원의 매화나 해남 보해매원의 매화를 매화로 쳐주지 않는다. 매실의 생산이라는 실질적인 목적 때문에 대량으로 심다 보니 집단에 매몰되어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군락의 매화들을 경박하다고까지 한다. 아마도 '역사'가 짧고 기품이 없는 데가 차량 정체가 일어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그 풍경 자체를 싫어하는 듯하다.
하지만 집단의 군락을 이룬 매화의 새로운 풍경은 옛날 안마당에서 선비들만 즐기던 매화를 밖으로 끌어와 대중화했다. 많은 사람이 매화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으니,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매화를 꼭 깊이 있는 눈, 심미안으로만 볼 건 아니다. 지나가버린 유산으로, '선비'의 눈으로만 매화를 볼 일은 아니다. 사실 매화의 꽃잎을 선입견 없이 들여다보면 청초함에 더하여 매혹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개인적으로 고백하자면 고혹적인 느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