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사람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판사도 사람이라는 말은, 그들 역시 무지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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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도 사람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판사도 사람이라는 말은, 그들 역시 무지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판사가 지닌 '사람으로서의 한계'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재판의 객관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형식적 권위에 기대는 것이다. 우선 판사는 입는 옷부터 다르다.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 색 천에, 고급스러운 보랏빛 장식이 달린 가운이 판사의 법복이다.
비록 장식의 색깔이 다르기는 하나, 검사도 검은색 가운을 입는다. 반면에 변호사는 법복을 입지 않는다. 재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당사자들이 법복을 입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일반인 가운데 비슷한 옷을 입는 사람은 교회 성가대 정도일 것이다. 법복은 판·검사를 '보통 사람들'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만일 재판을 방청하러 가면서 검은색 가운을 입는다면 입장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판사가 들어서는 순간, 재판정의 모든 사람이 일어나 경의를 표해야 한다. 판사는 인사를 받으며 들어와 가장 높은 곳에 앉는다. 법정에서 판사에게 주로 쓰는 호칭도 정해져 있다. 민사재판에서는 '현명하신 재판장님'이고, 형사재판에서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다.
이렇듯 '현명'하고' '존경하는' 재판장 앞에서 함부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확연히 구분되는 의상, 드높은 좌석, 경외가 담긴 호칭, 강요된 침묵 등은 종교 의식 행위와 비슷하다. 이 모든 것은 판사에게 초월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다.
형식적 권위만으로 충분할까? 어떤 면에서 판사의 권위는 종교 지도자를 뛰어넘는다. 목사가 설교할 때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라고 항의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설사 그런다고 해서 '교회소란행위'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판 도중 판사의 말에 토를 달면 법정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여기서 죄목이 '재판장모욕죄'가 아니라 '법정모욕죄'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재판을 이끌어가는 것은 판사 개인이 아니라 '사법정의'의 대리인인 것이다. 법정모욕죄가 아니어도, 재판장은 직권으로 퇴장을 명할 수 있고, 감치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절차가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지는 분명하다. 판사의 결정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2017년 9월 어떤 판사는 재판 결과에 항의하는 피고인의 형량을 3배나 높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고 등으로 1년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엉터리 재판'이라며 거칠게 항의하자, 3년으로 바꿔 판결한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판사의 옷, 좌석, 호칭, 질서 유지에 반대하지 않는다. 경직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필요는 있으나, 나는 사법부의 권위 유지 수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형식적 장치만으로는 사법부의 권위나 신뢰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사법부는 '지킬'만한 신뢰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34개 회원국 가운데 33위를 차지했다. 꼴찌에서 두 번째다.
국내 여론조사 결과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016년에 행한 '법원 신뢰도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재판결과가 '불공정하다'고 답한 시민들의 비율이 70.6%에 달했다. '공정하다'고 믿는 비율은 23.7%에 지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사법부가 불신받는 이유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들은 재판이 불공정하게 이뤄지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사법부가 '돈과 권력'에 약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판사의 성향과 자질'이 공정한 판결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재벌 봐주기'나 '정권 눈치보기' 판결, 몰상식한 성범죄 판결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판·검사가 지닌 '사람의 한계'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지 않는 한, 아무리 근엄한 옷을 입고 코피 터질 만큼 높은 곳에 앉아도 권위와 존경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교육'과 '법제도 정비'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