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모든 아이에게 올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 그 말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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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모성 보호?
서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아주 얇은 책을 한 권 샀다. 개헌에 공감한다면서도 권력 구조 외에 다른 조항에 대해서는 무지한 나에 대한 반성이었다. 천천히 헌법을 읽었다. 그러다 눈에 확 들어온 조항이 있었다. 헌법에 있기에는 생경한 단어였다. 제36조 2항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모성? 모성을 왜 국가가 보호해야 하지? 모성만 보호한다는 것은 차별 아닌가?' 모성을 보호하는 건 애를 낳지 않은 여성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또 부성에 비교하면 보호랍시고 오히려 더 많은 의무를 책임지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을 들어 합헌 결정을 내린 사례가 있었다. '입양기관을 운영하는 자는 기본생활 지원을 위한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을 설치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는 법이었다. 미혼모에 대한 부당한 입양 권유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정당하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었다. 미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국외입양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익이 중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헌이 된 법 조항은 미혼모에게 모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혼모의 자녀 양육을 유도하고 국외입양을 줄이는 것은 사회적 환경과 여건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부당한 입양 권유는 관리, 감독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대한사회복지회, 홀트아동복지회 등은 과거부터 입양기관과 미혼모시설 등을 운영해왔음에도 법이 제정된 이후 시설을 폐지해야 했다. 시설들 간의 연계는 오히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미혼모가 선택할 방안을 찾도록 도울 수 있다.
모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막아야'모성에 대해 언급한 것 자체가 문제인가?' 하지만 헌법이,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법학자들이 만든 헌법이 모성에 관해 규정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기본권헌장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제32조에서 '모성을 이유로 한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자녀의 출산이나 입양 후 출산휴가 또는 양육휴가를 요구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제23조는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을 보장하고 충분히 대표되지 못한 성을 위한 시혜 조치를 명문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모성에 대한 언급은 성 평등 보장의 시혜 조치로서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기본권헌장과 헌법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유럽연합기본권헌장은 모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헌법은 모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모성 보호가 '출산 휴가를 주는 것'이라면 모성을 이유로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는 '출산휴가 이후 돌아와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모성보호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모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
19대 국회 헌법 개정 자문위원회도 '국가의 모성 보호에 머무르던 성 평등을 가족 기능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모성보호는 모성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여기며 국가가 가장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성 평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창하기 위해서는 모성을 이유로 한 차별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만약 내가 이 조항에 대해 개헌한다면 '모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금한다'는 조항을 추가할 것이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권리와 의무는 '어머니'만의 책임이 아니다. '하느님이 모든 아이에게 올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는 고루한 문구는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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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모든 아이에게 올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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