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역시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보고, 출산과 육아의 문제를 여성-남성-국가 3주체 모두가 짊어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헌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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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적한 것처럼, 아무리 추상적인 언어나 관념들이더라도 헌법에서만큼은 더욱 섬세하고 예민하게 쓰여야 한다. 여성을 바라보는 관념과 성차별을 표현하는 언어의 문제는, 우리 사회 모든 쟁점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 문제를 '여성 문제'라 명명하는 것조차 아이러니다. 세상 모든 문제, 노동, 정치, 민주주의, 교육, 건강권, 가족, 인구, 외교와 통일까지 모든 영역에서 성차별이 실재하기에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헌법차원의 노력은 필수적이다.
물론 현행 헌법의 평등을 향한 노력 덕분에 형식적 평등이 각 분야에서 정착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특히 교육의 기회에서의 성차별은 양적으로 해결되었고 그 결과는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들의 그것과 차이나지 않는다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정치와 노동, 건강권과 가족 문제에서의 차별은 여전하며, 이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이라는 불투명한 단어로 여성의 삶을 축소시켜 서술한 현행 헌법에도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각의 30%를 여성으로 꾸리고, 원내 5당 중 세 개 정당의 당대표가 여성인 점은 여성들이 드디어 정치에서도 어느 정도 대표성을 쟁취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20대 국회는 여전히 전체 의석의 17%만을 여성에게 내주었다.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에서 여성의 비율이 확연히 낮아지는 것은 정당과 유권자 모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문제다.
취업 시장과 노동 현장에서의 불이익, 성별 임금격차,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모두가 여성을 향하고 있으며, 낙태죄의 존재는 여성의 건강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견고한 성별 이분법 구조와 인구 재생산 중심의 가족계획 아래에선, 남녀 한 쌍과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가족'을 향한 사회적 강요는 지속되고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는 '파트너 등록법'은 계속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열 번째 헌법은 조금 더 두껍고, 조금 더 자세히 쓰일 필요가 있다. 모든 국민들이 쉽게 읽고 쉽게 이해하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헌법의 미덕임을 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이 더 두꺼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법이라는 그물망은 소수자를 향해서는 미처 촘촘하게 짜여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지금껏 여성에게 그래왔고, 장애인과 동물과 자연에게 그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실현하겠다 천명한 이번 10차 개헌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아주 특별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 9차 헌법은 기나긴 독재를 끝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최초로 보장했다는 점에서 가치있지만, 민주화 운동 직후 '다급하게' 제정되어 약자와 소수자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각 정당들의 이익 논리에 묻혀 개헌은 계속해서 미뤄졌고, 우리는 미숙한 헌법 아래에서 지난 31년을 살아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평등과 여성인권 이슈가 다시 우리 곁을 찾아온 이 시기에, 국민이자 여성으로서 헌법 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고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생에 처음으로 31년 만의 개헌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1987년처럼 이제는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의 진지한 토의와 자유로운 의사 표명으로 공정하고 평등한 헌법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게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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