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지난 3월초 '이달의 스승' 3월 인물로 뽑은 최규동 한국교총 초대 회장 입간판을 정부세종청사에 내걸었다가 떼어냈다.
윤근혁
윤 기자가 <오마이뉴스>가 주는 시상에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횟수는 총 47회다. 이 중 30회는 특종상을 받았다. 기록적인 횟수다. 수상 횟수만 놀라운 게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변화가 그의 펜 끝에서 시작됐다. '불곰 기자'가 뽑은 특종은 이렇다.
지난 2015년 2월 17일, 윤 기자는 이메일로 한 통의 보도 자료를 받았다. 그만 받은 건 아니었다. 교육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면 모두 받은 보도 자료였다. 제목은 이랬다.
'시대를 초월하여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이달의 스승 선정'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시하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가세해 새롭게 만든 교육 사업이었다. 보도자료 어깨 제목엔 '3월의 스승,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 백농 최규동 선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덧붙여 보도자료 속 '교육부 관계자'는 이런 말도 했다.
"교권침해와 명예퇴직 증가 등 교원 사기가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훌륭한 스승을 기억하는 일은 현장에서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고 계신 선생님들의 노력이 미래 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 우리 사회의 스승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이튿날, 언론은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 사업을 벌인다고 받아썼다. 몇 시, 몇 분, 몇 초만 다를 뿐, 거기서 거기인 내용이 지면을 채우고 전파를 탔다. 월급 받는 기자들은 교육부를 소위 '띄우는' 데 활자를 동원했다.
윤 기자는 달랐다. 이런 생각이 먼저 머릿속을 스쳤다. "12명의 이달의 스승 가운데 친일파가 들어 있지 않을까?" '교육부 사업'이 아니라 '이달의 스승'에 꽂혔다는 거다. 그는 국정교과서를 부활시키려는 박근혜 정부였기에 사실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휴대전화를 들어 민족문제연구소에 전화했다.
윤 기자는 최규동의 친일행적을 찾아달라고 했다. 12명의 뒤를 파보겠다고 한 일이 전화통을 붙잡는 거였다. 그는 "누군가의 뒤를 파볼 능력이 부족해"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에 있는 이준식 연구위원(현 독립기념관 관장)에게 부탁을 한 거다.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최규동이 '죽음으로써 임금(천왕)의 은혜에 보답하다'란 글을 쓴 사료를 발견했다."이 말을 듣고 윤 기자는 놀라지 않았다. 예상한(?) 결과였다. 일제 강점기 학교를 세우고 교장을 역임했다면, '친일' 행적을 의심해보는 게 상식이었다. 이렇게 '이달의 친일 스승 파동'의 뇌관이 터졌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가서 알았다. 윤 기자만 최규동의 친일행적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었다. 다른 기자도 똑같은 부탁을 했으나 그때는 찾을 수 없었단다. 어찌 된 일일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최규동의 친일행적은 '한국어'로 검색이 안 됐단다. '일본어'를 입력하니 1942년 6월, <문교의 조선>에 실린 최규동의 글이 나타났단다. <문교의 조선>은 일제 관변잡지였다. 이 연구위원은 "30분 만에 최규동의 친일행적을 찾았다"고 했다. 한자와 일본어가 뒤엉켜 있던 최규동의 논문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다'에 적힌 내용 일부는 이렇다.
"오래도록 기다리고 바라던 조선동포에 대한 병역법 실시가 확정되어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쇼와 19년부터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중략)
생각건대 시정 이래로 30여 년 역대 천황은 항상 일시동인(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의 감사한 대어심(大御心)을 반도의 민초들에게 베푸시고 갓난아기처럼 애무육성하심으로써 오늘의 영예를 반도 민중에게 짊어지게 하신 성려(임금의 염려)의 광대무변한 진실로 공구감격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반도동포는 남녀노소 한결같이 이 광영에 감읍하여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하고 더욱더 자애분기하여 스스로 자질향상을 도모하고 더욱 더 충혼으로써 성지에 부응하여 받들어야 한다."교육부가 말한 '훌륭한 스승'은 알고 보니 학생들은 천왕을 위해 죽자는 '훌륭한 친일 스승'이었다. 교육부가 교총과 함께 선정한 인물은 '이달의 스승'이 아니라 1·2대 교총 회장이고 '이달의 친일 스승'이기도 했다. 윤 기자가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힐 사건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2015년 3월 11일, 윤 기자는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한 학교로 갔다.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서다. 황 장관은 '이달의 스승' 사업을 직접 지시한 장본인이었다. 논란에 대답할 책임이 있었다. 윤 기자는 황 장관을 만나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이달의 스승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있나?""장관이 직접 지시한 사업이라서 '사과' 여부를 자꾸 묻는 것이다."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윤 기자가 잇따라 쓴 '이달의 친일 스승' 관련 기사에 분노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부터 시민단체까지 성명서를 발표하고 피켓을 들었다. 교육부의 보도 자료를 받아썼던 언론들도 그제야 '이달의 스승'을 검증한 기사를 쏟아냈다. 결국, 교육부는 몇 달 동안 좌충우돌했다. 그러더니 '이달의 스승' 선정 인물들을 모두 포기한다고 항복했다. 황 장관도 국회에서 사과했다. '불곰 기자'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특종 기사다.
[이달의 친일 스승 관련 기사] '천황 위해 죽자'는 이가 민족의 스승? 교육부, 최규동 초대 교총 회장 선정 논란'이달의 친일 스승' 그 후, 너무나 뻔뻔한 교육부와 교총'이달의 스승' 논란에 황우여 장관 "장관이 낄 일 아니다"'친일 의혹' 1, 2대 교총 회장, 나란히 '이달의 스승'에교육부, '이달의 스승' 선정 인물 모두 포기 "헝그리 정신과 뉴스게릴라...되새겨봐야"
▲국제교원단체총연합(EI) 총회에서 취재하고 있는 윤근혁 기자
윤근혁
"헝그리(Hungry) 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팩트를 향한 끊임없는 배고픔. 기자라면, 이런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결국 제보를 많이 받는 부자 기자가 된다. 하하"지난 1월 10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만나 윤 기자는 직업 기자를 향해 이렇게 '주먹 같은 말'을 날렸다. <오마이뉴스>에도 마찬가지다.
"<오마이뉴스>는 기자를 '뉴스게릴라'라고 칭하는데, 이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게릴라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남이 버린 전술을 그대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요즘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보면, 기존 언론의 시각과 비슷하다.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많이 안 보인다. 팩트를 향한 헝그리 정신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생산했으면 한다."주먹만 치켜세우지 않았다.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있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직업 기자가 아닌 시민기자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고 마이크가 돼주고, 춤을 출 수 있게 해줬다.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마당'을 제공했다는데, <오마이뉴스> 존재의 가치는 크다."때론 교사로, 때론 교육 전문기자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나쁜 제도에 주먹 같은 기사를 날리는 '불곰 기자', 아빠의 마음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당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아빠 같은 기자', 교육 권력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하는 '촛불 기자'.
나는 이런 윤 기자가 우리 사회의 교육을 바로 세우고 정의를 구현하도록 진심으로 응원한다. 10여 년 뒤 교육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이루길 바란다.
'기자다운 기자'가 사라진 언론판에 기자정신으로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든 이들이 있다. '기레기'가 판치는 죽은 언론 시대에 온몸으로 취재하는 이들이다. 월급 받는 기자가 아닌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다.
▲지난 2월 17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6 올해의 뉴스세릴라 시상식 및 20대 청춘기자상 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자와 오연호 대표, 최경준 뉴스게릴라본부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우성
*윤근혁 시민기자 1편
"여기 털리면 큰 일" 수상한 비밀 사무실 파헤친 특종기자에 이어진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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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기자, 교육 전문기자. 윤근혁 시민기자의 별칭입니다. 그는 매월 1만원씩 자발적 구독료를 납부하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입니다. 보수언론이 장악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직한 언론, 진실한 목소리 내는 오마이뉴스를 지키기 위해 힘이 돼주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휴대폰 010-2306-3962로 전화주시면, 다양한 방법으로 오마이뉴스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드립니다. 직접 인터넷으로 가입하고자 하신다면, 링크(http://omn.kr/5gcd)를 클릭해주세요.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기자를 지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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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스승이 친일파? 역사 바로 세운 '불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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