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불평등에 비례하는 자살률.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 나오는 그래프.
관계부처 합동
보고서는 사회구조나 문화적 여건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우울증에 의한 극단적 선택도 사실은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도록 만드는 사회문화로 인해,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정신질환자 대우를 받을까 봐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일이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보고서에서 강조됐다시피 자살은 경제문제와 가장 크게 직결된다.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면 극단적 행동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서양의 자살 문제를 정리한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미누아의 <자살의 역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중세 이후로 변한 것은 없었다. 가난, 신체와 정신의 쇠락은 여전히 시골 평민들이 자살을 택하는 주된 이유였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 끊는 사람들을 정신이 나약한 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폭력적인 태도다. 조르주 미누아가 말한 '가난 때문에 자살한 시골 평민들'은 나약하거나 무능해서 빈곤해진 게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국가와 가진 자한테 수확물의 상당 부분을 넘길 수밖에 없어서 가난해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실은 타살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도 사회적 관점에서 자살을 연구했다. <자살론>에서 그는 이 문제를 사회현상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자살은 경제위기 때처럼 개인에 대한 사회의 구속력이 너무 약해도 일어나기 쉽고(이기적 자살), 국가윤리나 집단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처럼 사회의 구속력이 너무 강해도 일어나기 쉽고(이타적 자살, 순교·순국 등), 개인이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도 일어나기 쉽다(아노미성 자살).
자살이 실은 타살이라는 점은 조선 시대 자살 중에서 109건을 다룬 송병우의 논문 '조선 시대 개인의 자살, 사회적 타살'에서도 강조된다. 2015년에 <동양한문학연구> 제40집에 실린 이 논문에 따르면, 109건 중에서 절반 이상은 명백히 타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의 조선왕조실록에서 논문 저자가 찾아낸 109건의 사례를 분석한 이 논문에 따르면, 그중 27건의 원인은 분노·절망, 15건은 충절, 8건은 정절, 5건은 억울함이다. 이들을 합하면 과반수인 55건이다.
분노·절망·억울함은 주로 타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 때문에 생긴다. 충절·정절도 국가윤리나 사회윤리를 전제로 한다. 충절·정절을 지키기 위한 극단 행동은 뒤르켐이 말한 이타적 자살에 가깝다. 따라서 그 55건은 사회적 타살로 분류될 수 있다.
논문에 소개된 평민 이상좌는 외형상으로는 빈곤 때문에 벌금을 낼 수 없어 목숨을 끊었다. 겉으로 보면 개인적 문제 때문에 생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를 죽인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실은 국가였다.
음력으로 세종 7년 8월 23일 자(양력 1425년 10월 4일 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이상좌는 가죽신 제조업자였다. 그가 손님에게 가죽신 1켤레를 쌀 1말 5되에 판매한 게 문제가 되었다. 이 당시엔 쌀이나 포목이 화폐처럼 사용됐다. 그래서 쌀을 받고 가죽신을 팔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위는 법에 저촉됐다. 화폐 사용을 권장할 목적으로 현물거래를 규제하던 정부정책을 어기는 일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탓에 이 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부는 시행을 밀어붙였고, 힘없는 이상좌는 시장 감독기구인 경시서에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