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첸티 보육원 내부천장의 디자인이 이채롭다
박기철
당시에는 가난한 노동자나 매춘부들이 버린 아이들, 그리고 사제들의 부적절한 행위로 태어난 신생아들을 위한 곳이었다.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던 시절, 운 좋게도 무사히 성장한 아이들은 직물 공장 직원이나 부유한 가정의 하인, 그리고 수녀 등 성직자가 되거나 결혼을 해서 세상으로 돌아갔다.
버려지는 아이들도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갓 낳은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하는 부모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도 노동자들의 삶은 고달팠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를 매우 아름답고 부유하며 발달된 곳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곳에서도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피렌체의 특산물이었던 모직물을 만들기 위해 아르노 강에서 양모를 씻거나 염색을 하던 사람들을 '치옴피(Ciompi)라고 불렀다. 이들은 도시의 가장 하층 계급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길드에도 가입하기 어려웠다. 길드에 가입할 수 없으니 법적인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제대로 자녀를 키울 수 없어 결국 보육원에 아이를 버리게 된다. 가혹한 환경을 견디다 못해 이들은 '치옴피의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이런 하층 노동자들 만큼이나 보호받지 못했던 이들이 길거리의 매춘부였다. 예나 지금이나 매춘부에 대한 시각이 고울 리 없다. 중세시대, 일찍 남편과 사별한 여자들이나, 전쟁과 질병 등으로 부모를 잃은 소녀들이 혼자 길거리에서 살아남기는 특히 더 어려웠다.
공화정을 유지하던 피렌체에서도 시민의 자격은 성인 남성으로 제한되었다. 때문에 가족이나 친척 중 자신을 보호하고 대변해 줄 남자가 없는 경우 제대로 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피해를 구제받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주변 성인 남성들의 성적 학대에 시달리기도 했다. 길거리 여성이 어디에서 강간을 당해도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이런 여성들은 제대로된 직업도 구할 수도 없었고, 결혼을 하려고 해도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어 결국 매춘으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16세기에는 정부에서 매춘부 관리 기관을 만들어 매춘 영업 등록을 받았다. 이 등록을 하기 위해 돈을 내야 했으며, 정해진 구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노란색 두건이나 수건 등으로 자신의 직업을 표시해야 했다. 한 마디로 공창제를 실시한 것인데, 등록비를 내지 못하거나 정해진 구역을 벗어 났다가 발각되면 무거운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런 매춘부들은 항상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아이를 낳더라도 궁핍한 환경으로 인해 엄마가 직접 딸에게 매춘을 알선하기도 했다. 어린 소녀들은 비싼 화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가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보육원에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갓 태어난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면서도 부모들은 언젠가 다시 만날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훗날 아이를 찾을 수 있도록 반으로 쪼갠 자신의 목걸이나 기타 다른 증표를 아이 몸에 걸어 두었다. 현재 인노첸티 보육원에는 이런 증표들을 모아 두었는데, 보고 있자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현재까지도 이곳은 버려지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입양 가정과 연결해주고 있는데, 이곳에서 입양되어 성장한 이들의 사연 역시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은 참으로 길고 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