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반대' 문재인 사과 촉구한 성소수자 기습시위지난 4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남소연
대선 화두로 떠올랐던 '성소수자'의 존재그러니까 내가 캐롤과 테레즈가 영화에서 행복하던 순간조차 씁쓸함을 느꼈던 것은 그 위에 나의 현실이 겹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정한 권력자가 퇴출되고 저항이 승리하고 세상이 좋아졌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의 싸움이 끝이 났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이 좋아지든 나빠지든, 어떤 면에서 달라진 것 없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나쁠까. 사회가 망가질 때는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고, 사람들이 '이제는 정의가 바로 서 더 이상 외칠 구호가 없다'고 말할 때는 괴리감 때문에 고통스럽다. 아마 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금 성소수자들이 겪는 괴로움일 것이다. 새벽이 지나고 해가 떴다는데 내 방에만 볕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이 모두 부정적이고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냐면 그렇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은 후보이던 시절, 그는 대선 TV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발언을 했고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이에 무지개 깃발(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로 총 여섯 개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을 들고 항의 시위를 펼쳤다. 커다란 깃발만을 든 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던 사람의 코앞까지 걸어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친 것이다.
당시 내가 커밍아웃을 했던 사람들은 내게 놀라움을 표했다. 심지어 나도 그랬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무지개 깃발을 든 시위대와 문 대통령의 사진이 올라 갔다. 사람들은 저게 무슨 일인지 질문했고 성소수자는 이후 상당 시간 동안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도 많긴 했다.
더디지만 어둠 속에서도 변화는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살면서 내가 처음으로 본, 성소수자의 존재가 단시간에 극적으로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풍문과 혐오를 뒤섞은 사건·사고 기사가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외치는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활동의 영향인지 올해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활동이 확장되는 모양새를 띄었다.
서울과 대구에서만 열리던 퀴어문화축제는 이번 해 제주와 부산에서도 열렸고 내년에는 전주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개최가 될 예정이다. 또 퍼레이드가 아직 열리지 않은 지역을 돌며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알리는 행사 '퀴어 라이브' 역시도 올해 광주와 춘천, 대전과 울산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전국에 걸쳐 여러 성소수자 공동체들이 어깨를 함께하고 연대를 나눈 뜻깊은 자리였다.
여기에 정권 교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인권위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했으며 성소수자 차별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나 성소수자 차별 발언과 차별금지법 반대로 논란을 일으켰던 최이우 인권위원의 후임으로 장애여성공감의 배복주 대표가 임명된 것도 매우 큰 성과였다.
배복주 위원은 장애·여성·소수자 관련 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이 때문에 인권위의 진보적 정책안들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사람들은 예상하고 있다. 또한 군형법 92조의 6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뜻을 모은 국회의원이 늘어난 것도 올해의 성과라고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