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카네 이웃사촌. 돌카 엄마로부터 채소 꾸러미를 건네받은 그가 집으로 초대했다. 고등학교 선생인 그는 주말 부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송성영
돌카 엄마가 담장 너머로 채소 꾸러미를 넘긴 사내와 라다키어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저만치 서 있는 나를 향해 차를 마시는 몸짓을 보이며 말했다.
"아똥, 아똥! 짜이."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라다키 사내는 부인으로부터 어린 아기를 건네 안으며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줄레!""줄레!"'나마스테'가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인도 인사말이라면 '줄레'(juley)는 라다키의 인사말이다. 그는 돌카 엄마가 나에게 말했던 '아똥'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라 여겼는지 영어로 말했다.
"짜이 한잔하시죠. 라다키어로 아똥은 먹는다, 마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돌카 엄마로부터 배웠습니다."사내의 집은 넓었다. 너른 앞마당을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텃밭에는 돌카네 채소밭에서 보았던 치커리, 케일, 시금치, 완두콩, 고수 등의 갖가지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안락한 소파가 놓여 있는 그의 거실에는 제법 큰 책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돌카의 8촌이라는 그는 영어가 유창한 고등학교 선생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학교는 이곳, 초크람사의 요코마 마을에서 열 시간 거리에 있어 주말 부부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내가 내온 달콤한 짜이를 마시며 물었다.
"라다크에도 티베트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꽤 있죠?""예, 라다크에도 중국의 침략으로 티베트에서 망명한 많이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인도 국적을 가지고 있는 라다키도 티베트 사람입니다. 하지만 티베트에서 망명한 사람들은 인도 국적이 없습니다."
그의 말로는 티베트 망명자들은 땅이나 집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인도 국적을 가진 티베트인, 라다키들의 명의로 땅이나 집을 구입하고 있다고 한다.
"집 앞에 있는 텃밭을 봤습니다.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 텃밭을 일구기 어려울 것인데 누가 농사일을 합니까?""아내가 틈틈이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이 마을에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라다크의 중심지 레의 근교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초크람사 요코마는 네 개 마을로 구성됐다고 한다. 대도시 주변 마을답게 약 2천 명의 라다키들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주민이 대대로 농사지어온 농토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 바람이 불어오면서 남자들은 도시에 나가 돈벌이를 하고 있고 농사일은 여자들의 몫이 됐다고 한다.
"나도 한국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대부분 채소 씨앗을 직접 받아 농사를 지었는데 이곳에서는 씨앗을 어떻게 구합니까?""평생 농사를 지어 오고 있는 돌카 엄마는 씨앗을 받아쓰고 있습니다. 우리도 몇 가지 토종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