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MBC 해직기자
이정민
요사이 언론, 그리고 언론 종사자들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특히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란 용어가 횡행한다. '기레기'란 낱말이 사용된 직접적인 계기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였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언론의 역사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기자가 '기레기'가 아닌 시절은 별로 없었다. <한겨레>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자신이 현장에 있던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저널리스트, 즉 기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두 가지로 양분되는 것 같습니다. 정론직필을 통해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기자상이 하나 있는가 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현실에서 접한 기자들 가운데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들도 많죠. 이런 기자들은 역사적으로 계속 존재해왔고요. 국민들은 정론직필하는 기자를 기대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기자들이 많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니 <한겨레신문>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자신이 누굴 위해서 일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춘 언론인이 역사적으로 다수였던 적은 없다고 봅니다." - 본문 83~84쪽. '정론직필하는 기자가 역사적으로 다수였던 적은 없다'는 지적은 참으로 준엄하다. 무릇 현재 자신이 언론에 몸담고 있다면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겸허해야 할 것이다. 언론 종사자들이 정론직필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공의 이익보다 권력자의 이익에 더 충실하게 복무했기 때문이다.
한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 동안 언론이, 특히 공영방송이 '공영적'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전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영방송이 기레기로 전락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권 공동대표는 다시 한 번 뼈아픈 지적을 한다.
"...제대로 된 언론을 해보자고 했던 사람들이 민주정부 10년의 좋았던 언론환경에서도 왜 다수가 되지 못했는지, 왜 제대로 된 언론의 기풍을 만들어내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 본문 85쪽.마침 KBS·MBC 두 공영방송 노조는 방송 정상화를 위해 파업 중이다. 두 노조의 파업을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낙하산 사장을 몰아내는 게 파업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정부 10년, '좋았던 언론환경'에서 제대로 된 언론인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던 점을 자각해야 한다. 결국 방송정상화는 언론인의 자성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저자인 박성제 해직기자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방송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제도를 정부가 만들 수는 있겠지만 특정 방송사의 논조를 일일이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방송개혁은 언론인 스스로의 자성과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이야기다. 언론인들 스스로 싸워야 한다. 방송을 통제하려는 부패 권력과 낙하산 사장에 맞서서 기자, PD들이 저항해야 한다. 낙하산 사장을 몰아낸 다음,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혁하라고 당당하게 새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사장을 선임해야 한다. 이것이 KBS·MBC 개혁의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다. 이 첫 단추를 잘 채운다면 공영방송 정상화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지난 9년 동안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시민들은 언론이 바로서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이런 와중에 각계 전문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전문지식을 드러내면서 보도자료만 베낀 기사들을 에누리 없이 걸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환경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언론 업계는 구태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보수정권의 공영방송장악에 협력한 '공범자들'은 적반하장이고, 종편 패널들은 버젓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매체들은 클릭 장사에 열을 올린다. 이런 행태들은 자멸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제발 모든 언론계 종사자들이 박성제 해직기자의 외침을 경청하기 바란다.
"자성과 소통을 거부하는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에 의해 도태되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언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세상이 달라졌다."
권력과 언론 - 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
박성제 지음,
창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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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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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세상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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