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총 100부작 특집 다큐멘터리로 MBC에서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는 한국사 수업에 있어서 교과서 다음 가는 최고의 '부교재'다.
MBC
그중에도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총 100부작 특집 다큐멘터리로 MBC에서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는 한국사 수업에 있어서 교과서 다음 가는 최고의 '부교재'다. 아이들의 호응 역시 좋아 굳이 편집해 쓰지 않고 50여 분짜리 영상을 통째로 보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옥에 티라면 용량을 낮춘 영상이다 보니 화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뿐이다.
특히 자기 검열하듯 여전히 조심스러운 현대사 부분을 수업하는 데는 열 교과서 부럽지 않을 만큼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거두절미하듯 소략하게 다룬 내용을 영상을 통해 앞뒤 맥락을 이어 꼼꼼하게 들려주니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제격이다. 영상을 통해 본 것과 교과서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 보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교육적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아이들에게 파란만장했던 우리 현대사를 가르쳐준 진짜 스승인 셈이다. 친일파 문제부터, 제주 4.3 항쟁과 반민특위, 한국전쟁과 보도연맹 사건, 10.26 사태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에 이르기까지, MBC 특별 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아니었다면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조차 이를 두고 우리나라 최고의 현대사 영상 기록이라고 추켜세웠다.
지난 10월 26일에도, 학급 자율 활동 시간을 빌어 10.26 사태를 주제로 다룬 편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한국사 교사로서, 학사일정에 차질이 없다면 가급적 날짜에 맞춘 역사 다큐멘터리를 찾아 자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무릇 역사가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고 할 때, 1년 중 하루하루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찾아 기억하는 행위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웬만큼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면 대개 채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지기 일쑤인데, 조는 경우가 별로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38년 전 오늘, 심복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격 사망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많지 않았지만, 시신조차 수습되기 전의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상에 자못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PD들의 소명의식과 헌신적 노력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이끌어냈고, 10.26 사태에 대해 묻히고 왜곡되었던 사실들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과 너무나 다르다면서, 사료를 통해 정확한 진실이 무엇인지 따져볼 작정이라며 다짐하기도 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고, 교과서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진실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기실 교과서 내용만으로 10.26 사태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교과서의 마치 부록처럼 맨 뒤에 있는 현대사 내용 자체가 소략한 터라 더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고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 속 10.26 사태와 관련된 서술은 달랑 두 문장이다. 더욱이 단순한 권력 갈등이 주요한 원인인 양 묘사되어 있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참고로 한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발생하였고, 여기에 시민이 동참하면서 시위가 확산되었다. 이 사건의 처리 방법을 두고 권력자들 간에 갈등이 생겼는데,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며 유신 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10.26 사태).'영상 시청이 끝난 뒤 서로 간단히 소감을 나누는 시간, 한 아이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방금 본 영상의 화면에 'MBC 특별 기획'이라는 글귀가 보이던데, 그 MBC가 지금의 MBC랑 같은 방송사인가요? 설마 MBC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를 재평가하는 이런 민감한 내용을 공공연히 방송으로 내보낼 리는 없잖아요."'만나면 좋은 친구'는 '어용방송의 대명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