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지난 26일 육군 모 부대 소속 A(22) 일병이 진지 공사를 마치고 도보로 부대 복귀 중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사진은 총탄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원 동송읍 금학산 인근 군부대 사격장 모습. 오르막으로 된 사격장의 왼쪽 끝자락 상단 인근에 숨진 A 일병 등 부대원이 이동한 전술도로가 있다. 사격장과 A 일병이 총탄을 맞고 쓰러진 거리는 대략 400여m다. K-2 소총의 유효 사거리가 460m인 점을 고려하면 위험한 이동로인 셈이다. 사격 훈련 시에는 이 전술도로는 양쪽에서 이동이 통제되지만 사고 당시에는 아무런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2017.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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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본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아, 터질 게 터지고 말았구나"하고 탄식했습니다. 제가 복무했던 부대도 사고부대와 유사한 구조의 사격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다만 사로에서부터 전술 도로의 거리는 사고부대와 달리 유효사거리 밖, 최대사거리 안이었습니다).
육군의 사격장은 약 1500곳이기 때문에 사고 부대와 제가 복무했던 부대만의 문제는 아니리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합니다. 저는 주특기가 소총수여서 틈만 나면 사격을 했는데, 사로에서 엎드려쏴를 하고 있으면 바로 사격장 경사 너머로 산이 보였습니다.
산에 수풀이 우거져서 안 보이지만 수풀 사이에 전술 도로가 나 있었고요. 도로 뒤에는 주둔지를 두른 철조망이 있었습니다. 사격할 때마다 "상탄(上彈) 나면 위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맞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총구는 표적을 조준하고, 20발 쏘면 18발은 명중시키는 사수였기에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총을 그럭저럭 쏘는 숙련병이라도 심신이 피로한 상태라면 방아쇠를 당길 때 순간적으로 눈을 감거나, 호흡을 들이마시는 실수를 하면 총구가 올라가면서 상탄이 나기도 합니다. 대체로 사격에 미숙한 신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탄이나 도비탄이 날 확률, 그 탄이 수풀에 박히지 않고 전술 도로까지 날아갈 확률, 하필 그때 전술 도로에 사람이 지나갈 확률, 또 하필 탄이 그 사람에게 맞을 확률 등은 고려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직관일 뿐입니다.
통계학에서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반복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우연에 의하여 결정되는 실험을 '시행'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 시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사건'이라고 합니다. 사격 훈련이 일종의 실험 즉 시행이라면, 전술 도로로 탄이 날라가는 사건을 A라고 해봅시다.
총을 많이 쏠수록 A의 빈도 나누기 시행 횟수로 구한 확률은 여전히 미미해도, A의 빈도 자체는 증가할 겁니다. 가령, 위와 같은 사격장 구조에서 1만 발 당 1발이 전술 도로로 날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2만 발을 쏴도 여전히 확률은 0.01%이지만 2발이 전술 도로로 날아 갑니다.
사격 통제 제대로 했을까?그만큼 더 위험하다고 봐야겠죠? 문제는 현장의 사격 통제가 합리적 추론이 아니라 관행적인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기 쉽다는 겁니다. 사격장에는 반드시 통제관이 있는데, 통제관이 해야 하는 일의 성격은 과학자가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제대로 이끌어내고자 '변인(원인) 통제'란 걸 합니다. 과학자가 실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할 원인들을 통제하듯, 통제관도 정상적인 사격 외에 개입하지 말아야 할 문제들을 통제해야 합니다. 사격장 주변에 사람 못 다니게 막는 일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변인 통제에 실패한 연구자와, 사격 통제에 실패한 통제관은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통제관이 유능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사격장 주변에서 경계 근무를 선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 근무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듣지 못 한 채 그냥 "지키고 있어라"라는 명령만 하달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합뉴스> 29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 총기 사고의 피해자 이 일병 아버지도 "사격부대 통제병이 자신이 뭘 할지도 지시받지 않은 채 왔다고 우리 앞에서 진술했다"라고 말했습니다.(관련 기사:
"아들 잃은 것도 기가 막힌 데...군 도비탄 운운하며 책임 회피")통제 방송도 형식적입니다. 제가 복무하던 부대의 통제관(보통은 중대장)은 전체 사격 훈련이 시작되기 전 고작 한번, 훈련이 길어져야 두세 번 정도 확성기로 방송을 했습니다. 보통 "잠시 후 실탄 사격이 있을 예정이오니 민간인들과 군관계자분들은 신속히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합니다. 문제는 이 말만 들으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그래서 어느 방향에서 총을 쏜다는 건지 알기 어렵단 겁니다.
설사 군 관계자라 어느 방향에서 총을 쏘는지 알더라도, 사수들이 교대하는 중간중간 총성이 끊길 때 사격이 끝났는지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병을 인솔한 소대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까요. 간부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직관에만 의존해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간부는 병사들에게도 윽박지르는 것 말고는 해줄 말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이 현장 간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격장 간부들은 주어진 사격장 환경에서 사격 통제를 하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사격장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만든 건 병사들이나 용역업체 직원들이 고생해 만들었겠지만, 결국 건설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을 결재해준 실무자와 지휘관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사격장 정도의 규모면 최소 연대장이나 사단장급의 결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언론을 통해 도비탄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다느니, 100% 막을 수는 없다느니 사격장 설치 기준에 전술도로가 없다느니 말을 흘리는 군 관계자들이 있습니다. '무책임하다'라는 말로도 표현하기가 부족한 비겁한 행동입니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답은 사고의 직접 원인보다 근본 원인이 무엇이며 위험을 최대한 막을 방법입니다. 군 관계자들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군 사격장 전수조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