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개미취"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觀花美心)."는 글귀를 생각하며 꽃을 본다.
이명수
지난 주말, 축령산 통나무산방에서 아주 힘든 삶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암에 걸린 아내의 치료를 위해 그 마을에 전셋집을 구한 사람이었다. 술잔을 나누면서 사연을 들어보니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사람 나이가 마흔다섯인데, 너무 젊잖아요!"이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고, 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등에 진 삶의 짐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삶도 참 파란만장하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등이 휘어버릴 것 같은 그런 혹독한 세월을 견디기도 했다. 그래도 용케 주저앉지 않고 이날까지 걸어왔다.
지금도 역시 삶의 짐은 만만치 않다. 무겁디무거운 책임감이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고,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시작될 인생 2막 준비도 막막하다. 그런데 정말 힘든 사람을 만나고 보니 내 삶의 무게는 참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천국에는 거대한 '슬픔의 나무'가 있다. 그 나무에서는 자기가 당한 슬픔의 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남이 벗어놓은 옷을 골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자기 옷을 걸어놓고 천천히 나무 주위를 돌며 다른 옷들을 살펴본다. 그런 후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옷은 하나같이 자기 옷이라고 한다.
잘 따져보면, 그나마 자기가 당한 슬픔이 자기에게 제일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슬픔의 나무를 통과하면 하나같이 온전히 감사하는 인생이 되고, 하느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존재가 된다고 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대부분 문제는 정답이 없었다. 이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 기준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그 일을 정답으로 만드는 삶이 아름다울 것이다.
산길을 천천히 오른다. 둘러보면 곳곳에 이런저런 꽃들이 제 본연의 모양과 빛깔로 피어 있다. 산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자기 할 일은 다하면서도 말이 없다.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은 자연에 맡겨라."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숲의 치유 능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고, 그래서 건강을 잃은 사람들은 숲을 찾고 있다.
산길을 걷다 보면 기분이 편안해지고 심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몸과 마음이 맑게 하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다. 나는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산에서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다. 휴식(休息)의 쉴 휴(休) 자를 보면, 나무 옆에 사람이 있다.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쉬는 형국이다.
월도천심처(月到天心處) 하늘 가운데 달은 떠 있고풍래수면시(風來水面時) 바람이 물 위를 스친다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 이렇게 청아한 뜻요득소인지(料得少人知) 아는 이 적겠지.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소강절의 시이다.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인데, 이 시의 감상 포인트는 바로 이 평범함에 있다.
다산 정약용은 복을 청복(淸福)과 열복(熱福)으로 나누었다. 열복은 말 그대로 세속에서 부와 명예를 얻는 화끈한 복을 말한다. 다산은 세상에서 열복을 얻은 사람은 많지만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만큼 하늘이 청복을 아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