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련 창립 당시 재정에 큰 도움을 준 1. 장하구 종로서적 사장과 2. 한글 타자기 개발자이자 국내 최초 안과의사인 공병우 박사
민청련동지회
민청련 초기 운영자금 마련에는 김지하의 수묵화가 큰 도움을 주었다. 재정부장 홍성엽이 김지하 시인에게서 난초 그림 10점을 받아 왔다. 이 '김지하 난'을 마침 일본을 방문하는 성래운 교수에게 부탁해 일본교포들에게 5점을 팔고, 나머지 5점은 국내 지인들에게 판매해 500여만 원을 만들었다. 공병우식 타자기로 유명한 공병우 선생은 타자기 수십 대를 협찬해 주었다. 문익환 목사와 친분이 있었던 종로서적 장하구 회장도 후원금을 내놓았다.
10월 30일 9시, 새로 마련한 사무실에 첫 출근하는 집행부원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곧 사단이 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파고다빌딩은 비리사학의 상징으로 세상에 알려진 상지대학의 설립자 겸 이사장에 민정당 국회의원을 3번이나 지낸 김문기의 소유였다. 입주자가 민청련이라는 걸 안 김문기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입주한 지 1주일쯤 지났을 때 관리인이 찾아와서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방을 비워달라고 통고했다. 민청련이 입주식을 하자마자 빌딩 관리실로 안기부, 치안본부, 서울시경, 종로서 정보과 등 온갖 기관에서 민청련 담당자라는 사람들이 찾아와 동향을 캐물었던 것이다. 출판사로 알고 별 생각 없이 계약해준 빌딩 측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야단이 났고 그 소식은 김문기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다.
총무 박우섭은 관리실로 내려가서 계약서를 꺼내놓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계약만료 기간이 되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고 항변했다. 쉽게 나갈 사람들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관리인은 자기들이 받은 보증금에 이사비조로 상당액을 얹어 주겠다고 회유하는 한편, 만일 나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여 강제 퇴거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이 보기에 민청련은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범죄단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계약서에 무슨 일을 한다는 내용이 있을 리 없고, 범죄단체도 아닌 민청련이 민주화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쫓겨날 수는 없었다. 박우섭은 마음대로 해 보시라고 완곡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튿날 사무실에 출근한 민청련 집행부원들은 빌딩 앞 길거리에 책상, 소파 등 사무실 집기들이 쌓여 있는 걸 보았다. 지난밤에 관리실에서 인부를 시켜 사무실 집기를 모두 들어내 놓은 것이다. 5층 사무실에는 큼직한 자물통을 채워 출입을 막아 놓았다. 그들이 말한 대로 강제퇴거를 집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