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선 피해자 가족들이 직접 뛰어다녀야 했다. 요구한 서류조차 부대에서 제대로 받지 못했다. 힘겨운 싸움은 가족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희훈
일상이 없는 일상. 엄마의 싸움 너머엔 그것이 존재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 채워진 일상. 평범하지 않은 삶이 어느덧 일상이 돼 버린 상황.
윤 일병의 조부모는 사건 후 1년이 채 안 돼 고인이 됐다. 엄마는 거리에서, 텔레비전에서 군복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점잖았던 아버지는 화가 잦아졌고, 결국 고혈압 약을 먹어야만 했다. 매형은 국방부·법원을 쫓아다니느라 하던 일을 접었고, 그로 인해 누나는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공황장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는 웃다가도 "내가 이렇게 웃고 있어도 되나?"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도 "내가 한가하게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라며 몸과 마음을 감춘다. 하지만 마냥 울 수도 없다. "저 엄마는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거야"라는 숙덕거림이 귓전을 맴돌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성질이 나면 화내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요. 내가 막 화내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저 사람 윤 일병 엄마 아니야?'라며 손가락질 할까 봐…. 그래서 참고, 참고 또 참고 그러죠. 내가 무슨 천사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이젠 웬만하면 화도 안 나요. 바보가 된 느낌이에요."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군에서 사망 또는 상해로 전역하는 인원은 1년에 1700여 명 수준이다. 2015년에는 93명이 사망했고, 1587명이 병을 얻어 제대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한다면 1년에 6800명(1700×4)이 군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단순히 30년으로 계산하면 군에서 가족이 사망하거나 다쳐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인원은 20만 4000명(6800×30)에 이른다.
통상 사고가 발생하면 군은 행정적 수습 및 처리에만 몰두한다.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조사를 진행한다'는 명분 아래에 철저히 배제된다. "언론에 알리지 않고 사인만 하면 순직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회유와 압박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김운선(고 김준엽 하사 어머니)씨는 그 회유 때문에 3년 만에 아들의 죽음을 자살로 인정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순직 처분을 거부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이 그 이유였다.
이처럼 사고의 책임을 피해자 개인과 가정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군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국가보훈처는 고 김대웅 일병(2015년 5월 자살, 살아있다면 25세, 가명)의 중학교 시절 정신과 상담 내역을 들이밀며 유족의 보훈보상대상자 신청을 기각했다.
"멀쩡한 남자라고 해서 군대에서 데려간 것 아닙니까. 근데 왜 죽고 나면 멀쩡하지 않은 이유가 자꾸 만들어지는 건데요? 어떻게 죽었든 군대가 죽인 겁니다."하지만 김 일병의 엄마(이정숙, 49, 가명)에겐 절망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무너지는 가슴을 가까스로 부여잡은 채, 엄마는 지금도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군에서 발생한 사건의 경우 대부분은 군 복무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변사사건 기록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이유가 그 죽음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수사를 시작한다. 가정환경, 여자문제가 가장 자주 등장하고, 군 복무 중 업무과중, 내무부조리, 구타, 가혹행위 등 군에서 원인을 찾는 수사는 나중에 진행된다."(하주희 변호사, <군 피해자 치유·지원센터 왜 필요하며,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2017년 4월 12일)"90% 이상의 사람이 적응하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이 문제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중략) 적응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불면의 밤을 보낸 젊은이들이 견디다 못해 택한 마지막 결정인 자살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이영문 아주대 인문대 특임교수(정신과 전문의, 해병대 인권위원), <군 피해자 치유·지원센터의 필요성과 한계>, 2017년 4월 12일)책임지지 않는 국가
▲군 피해자들에 대한 예우는 현충원에 안장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진 봉안식은 군피해자 사건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이희훈
김 일병 엄마의 곁엔 재판 기록을 비롯한 서류 뭉치가 놓여 있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만난 군 피해자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두터운 서류 뭉치를 품고 있었다. 군으로부터 겨우 받아낸 수사기록부터 군을 상대로 한 재판 기록, 아들의 억울함을 증명할 이런저런 서류까지…. 윤 일병의 엄마는 "갖고 있는 서류의 복사비만 60, 70만 원이 나온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내보였다. 켜켜이 쌓인 서류 더미는 군 피해자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듯했다.
국가 예산으로 군트라우마센터(군 피해자 치유·지원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군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과 그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보훈처에서 관장하는 국가유공자·보훈보상대상자 제도뿐이다(이보다 앞서 국방부의 순직 처리도 필요).
이 시스템에는 너무도 큰 공백이 존재한다. 국가유공자·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을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지원 역시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앞서 소개한 김 하사, 김 일병의 사례처럼 그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훈 혜택을 받는 과정, 특히 각종 사고 발생 직후부토 소속 부대의 사고 종결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중략) 국가유공자 내지 보훈보상대상자로 등록되더라도 이들에 대한 지원은 금전적 지원과 신체 장애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보철구 지급과 재활 훈련 서비스만 제공되고 있어 사고 발생으로 인하여 겪는 정신적 어려움과 관련한 서비스는 결국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남게 된다."(국회 사무처, <군 복무 중 사망 군인의 가족 지원 방안 : 군 피해자 치유·지원 센터 설립 필요성을 중심으로>, 2016년 12월)윤 일병의 사례처럼 군이 사건을 조작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김 하사의 사례처럼 "언론에 알리지 않고 사인하면 순직으로 처리해주겠다"는 군의 기만 행위가 없어야 한다. 김 상병의 사례처럼 유족들이 망자의 사인을 인정할 수 없는 일도 없어야 한다.
▲제대를 2개월 앞둔 김찬욱 상병은 할머니에게 전화해 방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마지막 부탁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 최영자씨는 밖이 보이는 베란다에서 찬욱이의 이름을 부르며 김 상병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이희훈
이민욱 일병의 엄마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을 복용하다 간이 안 좋아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윤 일병의 매형은 지금도 처남의 죽음과 관련된 자료를 받기 위해 국방부를 드나들고 있다. 김 상병의 여동생은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의 부름에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야 한다. 방과 후 학교 교사였던 홍 일병의 엄마는 다시 일터에 나갈 자신이 없다.
현행 국가유공자·보훈보상대상자 제도는 이런 피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 제도 아래의 지원은 치유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군트라우마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곳에는 ▲ 정신건강 분야의 의료지원 대폭 확대 ▲ 군 측의 정보제공 의무 명시 ▲ 법률상담 ▲ 신체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는 응급조치 및 임시조치 ▲ 취업 및 대부 지원 등의 역할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 피해자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공복순(54, 고 노우빈 훈련병 어머니)씨는 지난해 직접 '군피해치유센터 함께(아래 함께)'를 만들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작게나마 이곳이 짊어지고 있다. '함께'를 경험한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
"보통 사람이 제게 '빨리 잊고 정신차려야지'라고 말하면, '당신은 안 겪어봐서 모르지'라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난다. 그런데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먹고 살아야지, 잊어야지' 이야기하면 위로가 된다."(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일반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두 번 정도 들으면 지치더라고요. 형제들도 자꾸 제가 울기만 하니까 '그만할 때 되지 않았냐'라고 그래요. 저도 알아요. 왜 그런 말을 안 하겠어요. 그런데 (함께에 가면)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어요. 같이 아파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제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그 이야기를 다 받아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필요했어요."(고 김대웅 일병 어머니)어떻게 죽었든, 군대가 죽였다. 이제 무거운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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