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를 옥죄는 그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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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낮엔 여성단체 활동가, 밤엔 알바생의 이중생활 중)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 SNS를 통해 몇 년째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여성이 전화로 도움을 요청해 와 직접 만나게 됐다. 그녀는 나름 안전한 공간인 상담소에서도 내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기색이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다.
따뜻한 물을 한 잔 건네며 '이곳은 안전한 공간이며,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긴 하지 않아도 좋다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더듬더듬 자신이 당한 피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잠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혹시 주변에 도움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고,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당한 이 피해를 사람들이 공감해 줄까요? 너무 사소해 보이는 거잖아요. 오히려 제가 너무 예민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하던 익숙한 질문. '제가 당한 이 고통을 사람들이 이해해 줄까요?'
"그럼요. 당신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짐작할 수도 없지만 저 같아도 두려웠을 거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걸요. 사소한 것은 없어요." 여느 때처럼 대답해주었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건 그 이야길 듣던 그녀도, 그 이야길하던 나도 알고 있었다.
"뿌리치고 소리를 지르든 신고든 뭐든 했어야지.""그럴 수도 있지 그런 일로 유난 떨지마. 네가 예민한 거야."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내가 만난 피해자의 대부분은 성폭력 사건 자체로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피해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주변인이 보인 반응에 상처 입는 경우도 많았다.
몇 달 전,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당시 그녀의 이야길 믿어주지 않던 가족들에게 20년 가까이 고통받다가 상담소를 찾은 여성을 만났다.
나의 이야길 좀 들어달라며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찾아온 그녀는 내가 동석한 자리에서 가족들을 향해 내내 울며 이야기했다. 왜 그때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냐고, 나는 내내 미친년처럼 살았다고...
그날의 나를 생각한다. 앉아보라던 그의 말에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았고, 이야기를 하던 그가 나의 몸을 만졌다면 그 순간 성폭력 피해자가 되는 거였다.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들이 주구장창 말하는, '먼저 유혹해놓고 피해자 퍼포먼스를 하는 꽃뱀'이 되고 '왜 그 자리에 앉았느냐', '왜 빌미를 줬냐'는 말을 듣는, '그럴 만해서 당한 여성'이 되었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그렇게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 혹은 내 곁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말의 온도'에 대해 생각한다. 말에는 가슴이 담긴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에도 체온이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야", "많이 힘들었겠다"는 따뜻한 말의 힘. 내가 올린 글 하나에 공감해주며 '씨X'이라는 말 한마디를 보태준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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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달린 "씨X" 댓글...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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