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8월 1일부터 법무부의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 신설 시행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한국어교실
고기복
퇴원하고 얼마 안 되어 산재 승인도 못 받고 근무처도 변경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알럼의 속내를 꿰뚫어보듯 사장이 연락해 왔다. 알럼은 사장을 못미더워하면서도 그를 만났다. 사장은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E-7-4)'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알럼은 E-7-4 비자가 어떤 비잔지 잘 알고 있었다. 주조, 금형, 용접 등 뿌리산업과 농림축산어업 등 업종의 숙련기능인력 확보를 위해 8월부터 법무부가 신설 시행하는 비자다.
주조, 용접, 농업, 어업 등의 경우 경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산업분야임에도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런 업종들은 고용허가제 등을 통한 비숙련 외국인력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들 외국인력이 어느 정도 숙련도를 갖추게 되면 비자만기로 본국으로 귀국해야 한다. 그래서 산업현장에서는 숙련인력 확보를 위해 비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알럼이 일하는 회사는 뿌리 산업에 속하는 유리·요업 업체로 해당업종이 된다는 게 사장의 설명이었다. 사장은 알럼이 뿌리산업 분야에 6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국내 근무경력 배점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고, 자국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미래 기여 가치 점수에서도 최대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장은 알럼이 기량검증이나 한국어능력 등에서도 점수를 얻을 수 있고, 읍면 지역 거주로 가점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비자 신청 요건이 되는 만큼 행정사를 통해서 적극 도와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게다가 무릎이 완전히 아물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된다며 빨리 회사로 돌아오라고 요구했다.
E-7-4비자를 발급받고 비자 요건을 유지할 경우 2년마다 심사를 거쳐 체류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알럼은 사장의 말에 혹했다. E-7 비자는 국내에 5년 이상 거주 시 영주권 비자(F-5)도 신청 가능하다. 알럼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알럼은 무릎에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비자를 얻을 수 있다면 잠시 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산재 신청 취소를 위해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상담하던 알럼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장이 알려주지 않은 한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E-7-4비자는 나이 제한이 있었다. 만 39세 이하까지만 신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알럼은 마흔이 넘었다. 알럼은 사장이 자신의 나이를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알럼은 다시 산재신청을 하겠다고 나섰다. 정말 '이래착저래착'이다. 그러나 알럼의 이런 태도는 사장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병원비를 내 주겠다', '비자를 받게 해 주겠다'는 등의 말로 알럼을 좌지우지하려는 사장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알럼의 실수는 "이래착저래착, 혼자 벨착"하는 사장의 말을 믿은 것이었다.
알럼은 산재신청을 하겠다고 했지만, 언제 다시 번복할지 모른다. 사장이 행정사를 통해 도와주겠다고 했을 땐,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럼은 요즘 들어 E-7-4비자를 얻어보겠다고 이주노동자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며, 이주노동자쉼터 한국어교실에 등록했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봐서 점수제 비자를 받는데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다. 알럼은 자신이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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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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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사장의 '희망고문', 산재신청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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