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왈샤 마을의 옷 수선집 중년 사내가 ‘한국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냐’고 물었다.
송성영
4개월간 떠돌았더니, 옷들이 다 해졌다라다크로 떠날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가능한 피해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 어쨌든 일주일 넘게 머물었던 리왈샤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떠나기 전에 옷을 수선하기로 했다. 배낭 속에는 두 벌의 옷이 전부였다. 4개월 가까이 인도와 네팔을 떠돌아다니며 입었던 그 옷들이 다 해져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다람살라에서도 재봉질을 했는데 이번에는 바지의 무릎 부분이 닳고 닳아 쩍 갈라졌다.
바지를 새로 살까 하다가 수선 집을 찾아 나섰다. 리왈샤 마을에는 옷 수선집이 여러 곳 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에서는 다 닳아 버려야 할 것 같다며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찾아간 수선 집의 나이든 중년 사내는 내 몰골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바지를 건네주며 거듭 '나마스테'인사를 건넸더니 그는 긴 수염에 봉두난발의 내 몰골을 안경 너머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한국 사람입니다.""한국은 잘 사는 나라 아닙니까? 그냥 옷을 사 입지요.""아닙니다. 아직 입을 만합니다."그에게 한국에서도 나는 팬티에 이르기까지 다 떨어질 때까지 옷을 입고 다닌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해진 옷을 살펴보며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도 이런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다니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드륵드륵 재봉질을 한다.
새 옷과 헌옷은 입거나 입지 않거나에 따라 분류가 된다. 사실 옷가게 진열대에 걸려 있는 새 옷은 쓸모가 없다. 옷가게 진열대에서 내려와 주인을 만나는 순간 쓸모 있는 옷이 된다. 그 어떤 새 옷도 하루를 입었건 1년을 입었건 입는 순간부터 헌옷이 된다. 내게 옷은 몸을 가리거나 혹은 날씨에 따라 몸을 보호하거나 하는, 편리성을 위한 쓸모 있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더구나 최대한 짐을 가볍게 꾸려야 하는 배낭 여행길이었기에 갈아입을 옷 한 벌이면 충분했다.
재봉질을 마친 중년 사내가 다람살라에서처럼 우리 돈으로 100원도 채 안 되는 단돈 5루피만 달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단돈 5루피로 바지 하나를 얻었다. 버려야 할 것을 수선했으니 그로부터 새로운 바지를 5루피에 새로 산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10루피를 건넸더니 5루피를 거슬러 주며 그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수행자입니까?""...나도 모르겠습니다."나는 인도 여행길에서도 반거충이였다. 한국에서 10여 년 동안 농사일을 해가며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반거충이로 밥벌이를 해왔듯이 인도에서도 여행자와 수행자를 오락가락하는 반거충이었다. 아니 여행자도 수행자도 아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딱히 목적지도 없이 끈 풀린 개처럼 인연 닳는 대로 길 떠나는 떠돌이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