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로 떠날 지프차 지붕에 짐을 실고 있다.
송성영
마날리에서 라다크 가는 지프차에 배낭을 실을 무렵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혼잡한 마날리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리왈샤 청년 까르마는 다른 짐들과 함께 내 배낭을 지프차 선반 위에 올려놓고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 천을 덮어 밧줄로 단단히 동여맸다.
"배낭에 노트북이 들어 있어 비 맞으면 곤란합니다.""걱정 마세요. 이렇게 하면 끄떡없습니다. 비도 많이 오지 않을 거 같고요."
지프차 지붕 위에서 내려온 까르마는 차안에 있는 가족들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라다크에서 열리는 티베트 최대 불교 법회인 칼라 차크라에 참여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인도 각지에서 열리는 칼라차크라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람살라에 계시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나 뵌 적도 있고요.""아, 이번에 달라이라마께서도 라다크에 오십니까?""그럼요! 칼라차크라 행사에 늘 참여하시지요. 달라이라마 존자님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달라이라마를 현존하는 부처로 믿고 있는 까르마가 라다크로 향하는 지프차 출발 시간이 저녁 8시라며 마날리 시장을 둘러 볼 것을 제안했다. 우비를 챙겨 입은 까르마는 시장에서 사촌 누이가 장사를 하고 있다며 앞장 서 걸었다. 가랑비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나또한 비상용으로 소지하고 다니는 얇은 우비를 걸쳤다.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있는 마날리 상가는 넓고 혼잡했다. 음식점과 과일가게 향신료 점포를 비롯해 기념품 가게, 옷가게, 숄 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까르마 사촌 누이는 옷을 팔고 있었다. 거기서 까르마와 헤어져 각각 저녁을 먹고 오후 7시 무렵에 지프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평균 고도 3500미터가 넘는다는 라다크의 날씨를 감안해 기다란 숄 하나를 구입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헤맸다. 늘 먹던 만두 종류의 모모나 국수 종류의 자오민을 요리하는 식당을 찾다가 향신료를 발라 화덕에 구워 내는 닭 요리, 탄두리 치킨 집을 발견했다. 히말라야 고지대, 라다크에 가려면 아무래도 체력 소모가 많을 것 같아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탄두리 치킨 집 손님들은 거의 다 터번을 두른 시크교인들이었다. 힌두교나 티베트 불교 신도들은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반해 시크교인들은 육식을 즐기는 편이다. 다른 인도 사람들에 비해 시크교인들이 유난히 덩치가 큰 것은 육식에 그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인도 타임은 코리안 타임보다 아주아주 늦을 겁니다"
모모나 자오민에 비하면 열 배 가까이 비싼 닭 반 마리로 하루 종일 굶주린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오자 비가 그치고 있었다. 지프차가 출발하려면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았다. 시장을 할 일 없이 둘러보고 지프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으로 향할 무렵에 또다시 비가 내렸다.
7월 초 몬순, 우기라고는 하나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얇은 우비 하나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바지는 이미 젖었고 윗도리마저 빗물이 스며들어 축축해 졌다. 갈아입을 옷 한 벌이 전부다. 그 옷조차 방수 천에 덮여 지프차 지붕 위에 꽁꽁 묶여 있다. 입은 채로 말려야 한다. 마날리가 2천고지라 하지만 한여름이기에 춥지는 않다.
까르마의 동생, 어린 깨샹은 할머니라 해도 무방할 만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엄마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열세 살, 깨샹은 처음 만날 때부터 싱글 벙글 웃는 얼굴이다. 라다크로 가는 여행길이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라다크는 처음 가보는 거니?""예. 처음요.""좋아?""너무 좋아요."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한국사람. 한국 알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