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공식적 모태솔로'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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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공식적 모태솔로'로 살아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적당히 믿음직스러운 거짓말을 변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스무 해하고도 몇 년을 가정의 울타리에서 보냈는데, 이렇게 전략적인 처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공식적 모태솔로가 되고자 한 이유는 간단하다. 연애, 그리고 연애의 과정에서 어느 순간 다가올 섹스를, 부모의 허락의 영역에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의 애인'이라는 존재는, 부모에게 언제나 위협적이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착하고 예쁜 우리 딸을, 지하세계의 어두운 곳으로 유혹할 것만 같은 상상이 부모의 머릿속에 펼쳐진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는 합리적인 의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연애의 시간은 결국 어느 순간 섹스의 가능성으로 연결될 테고, 섹스를 시작한 딸이 짊어져야 할 짐은 누구네 아들보다는 훨씬 무겁고도 무서운 것일 테니 말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성(性)에 대해 말하는 가정은 가장 늦은 속도로, 아주 낮은 비율로 늘고 있다. 시대의 변속 정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나고 자란 가정의 분위기도 다를 바가 없었는데, 부모님은 해방의 자유를 원체 중요하게 여기던 내가 뾰로통해지기 딱 좋은 그 정도의 태도를 취하셨다.
'첫사랑'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고3 때 찾아왔고, 그것은 '첫 연애'로 이어졌고 '첫 섹스'로 순간의 매듭을 지었다. 생에 처음 느껴보는 달콤한 시간이었지만, 부모님께 자랑할 수는 없었다. 당시 남자친구의 존재를 숨긴 가장 큰 이유는, 섹스보다는 공부에 있었다. 고3 때 연애를 하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며 부모님이 혼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고등학생의 나는 연애 '관계'가 섹스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도 했다. 쑥스럽지만, 그때는 진짜 그랬다.
엄마와 나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둘도 없는 절친이지만, 남자친구와 섹스했다는 사실만은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와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평소에 엄마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면 모를까, 엄마와 나 사이에 그런 시간은 전무했다. 나는 항상 전교 몇 등씩이나 턱턱 해오는 똘똘한 딸이었고, 그런 딸과 섹스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흥미로운 건, 엄마는 보건 교사로 오랜 시간 교단에 계셨다는 점이다. 엄마는 도심에서 멀리 벗어난 시골의 한 여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셨고, 그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선생님 중 한 분이셨다.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인 엄마는, 분명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잘 지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보건 선생님인 만큼, 성교육은 또 얼마나 재미있게 해주셨을까!
성교육을 직업으로 해온 우리 엄마조차도, 딸의 섹스까지는 상상의 범위를 펼치지 못했다. 생각했을 수는 있어도, 당연히 권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 하지 않기를 더 간절히 바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엄마가 선택한 건 '침묵'이었다. 어차피 얘는 남자에 관심도 없는 것 같으니, 괜히 호기심 생기게 알려주지 말자는 생각이셨을까? 자녀는 부모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 머리 위에서 놀아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간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