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칼라 디 소토 섬에 편지와 우편물을 배달하는 일이야."
"다행이네요, 저도 그 근처에 살아요."
"수취인은 단 한 명이야."
"한 명이요?"
단 한 명의 수취인은 바로 파블로 네루다. 마리오는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편지를 그에게 전하게 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유명인사를 직접 만난다는 사실에 마리오는 전에 없이 들뜬다. 처음 네루다는 그를 한낱 우편 배달부로 대할 뿐이었다. 그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마리오는 네루다와 친해지고 싶고, 사람들에게 그와의 친분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순진한 청년이다. 그에게 파블로 네루다는 '위대한 민중 시인'이 아닌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특히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이다.
시가 뭐길래 여자들은 네루다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일까? 마리오는 네루다와 시에 대한 궁금증으로 난생 처음 시집을,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사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서서히 시에 빠지게 된다. 언제나처럼 편지를 배달하러간 마리오. 편지를 전달하고 멀뚱히 서 있는 그를 보고 네루다가 말을 꺼낸다.
"왜 그렇게 기둥처럼 우두커니 서 있나."
"깊이 꽂힌 창처럼요?"
"아니 장기판 말처럼."
"도자기 인형보다 조용했죠."
"내 책 중에 '근본에 관한 노래' 보다 나은 것도 많은데 거기 나온 직유와 은유로만 날 시험해 보는 건 창피한 일 아닌가?"
"... 뭐라고 하셨죠?"
"은유"
"은...유?"
"은유란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를 하는 거야."
"그것이 시를 쓸 때 사용하는 건가요?"
"그렇지."
"예를 들면요?"
"예를 들어 '하늘이 운다'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오는 거죠."세계적인 시인과 세계적인 시인을 통해 시를 처음 접하게 된 청년, 마치 세상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되는 그 놀라운 순간을 이 영화는 포착해낸다. 마리오는 아무 것도 모르기에 오히려 진실한 시의 심장을, 정수를 말한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었어요. '인간으로 사는 것에 지친다.' 저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표현을 못 했거든요."마리오가 말하는 이것, 마음속에 이미 있는데 표현하지 못하는 것. 결국 시, 문학이란 언어로는 닿지 못하고 담지 못할 마음과 세계에 닿기 위해, 그것을 포착해 내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문장을 찾아내는 작업이 아닌가.
"여기 섬에는 바다,
매 순간 얼마나 많은 바다가 솟아나는지.
그렇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다시 아니라고 한다.
푸르름과 포말과 질주 속에서 다시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며 가만히 있지 못한다.
'내 이름은 바다야' 하고 계속 말하며 바위에 들러붙지만 소용이 없네.
그러면 일곱 초록 호랑이 일곱마리 초록 개, 일곱 개 초록 바다의 일곱 개 초록 혀로 그 위를 훑고 입 맞추고 적시고 가슴을 두드리며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네."태어나 매일 같이 보던 풍경, 그래서 마리오는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던 바다를 앞에 두고 네루다가 시를 읊는다. 매일 보던 풍경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어떠나?"
"이상해요, 시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말씀하실 때 이상한 느낌이 왔어요. 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어요."
"바다처럼?"
"네, 바다처럼."
"그게 운율이야."
"뱃멀미가 났어요. 배가 단어들 사이에서 퉁퉁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배가 단어들로 튕겨진다고?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뭔지 아나? 그게 은유야."
"설마... 아니에요."
"맞아."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이 다른 것의 은유란 말씀인가요?"시를 처음 접하고 알아가는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신선함을 느끼고 이내 둘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마리오에게 첫 눈에 반한, 불에 덴 듯한 사랑이 찾아온다. 시를 알게 되어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어 시가 더욱 애달파졌다.
"저 사랑에 빠졌어요."
"잘됐군, 치료 약도 없어."
"아니요! 치료 약은 안 돼요. 낫고 싶지 않으니까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친구들에게 음성 편지를 녹음하는 네루다. 옆에 있던 마리오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이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보라고 하자 그는 녹음기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베아트리체 루소."마리오가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이다. 그렇게 사랑을 하며 시인이 된 마리오는 "당신의 미소는 나비의 날개처럼 얼굴 위에 펼쳐진다"는 등의 말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당신의 미소는 장미, 서슬 퍼런 검, 솟아오르는 물줄기, 그대의 미소는 갑작스러운 은빛 파도.
당신이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좋아, 당신이 낯설어 보이니까."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모든 것을 남겨둔 그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