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어도 걸어도> 포스터
영화사 진진
"무는 정말 유용해"
"그럼 감자는?"
"감자는 솜씨에 달려있고, 무는 졸이거나 구워도 되는 데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잖아."큰아들 준페이의 기일에 맞춰 온 가족이 모이는 날,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 토시코와 그것을 거드는 딸 지나미, 지나미는 초등학생 아들과 딸을 둔 가정주부이지만 토시코와 비교하면 여전히 철없게만 보인다. 그리고 기일에 맞춰 고향에 오는 또 한 가족, 주인공 료타와 그의 부인 유카리, 유카리의 아들 아츠시.
"사별은 죽은 남편과 비교당해서 힘들어, 차라리 이혼이 낫지 싫어서 헤어진 거라던가."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무서운 소리를 하네."토시코의 며느리이자 료타의 부인 유카리는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사별해 료타와 재혼을 했다. 아츠시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토시코는 나이도 차고 변변치 않은 료타이지만 그래도 초혼이 아닌 상대와 결혼한 것이 그리 탐탁지는 않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했던가.
니쿠자가와 감자샐러드, 청콩양하밥과 옥수수 튀김, 차고 넘치게 음식을 하면서도 부족할까 초밥을 배달시키는 토시코. "차린 게 없어서 어떡하니." 엄마들의 걱정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매한가지다.
10년 전 죽은 큰아들 준페이는 엄마, 아빠의 자랑이 되는 모범적인 자식이었다. 이에 비해 그림을 그리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료타는 엄마에게는 귀여운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는 탐탁지 않은 아들. 동네 의원을 하던 아버지는 아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직업을 물려받아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저는 커서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겠습니다. 형은 외과, 나는 내과. 아버지는 늘 가운을 입고 계십니다."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 싶다던 일기를 쓰던 어린 시절의 료타와 중년이 되어 아버지와 소원해 진 료타의 사이에는 몇 번이고 엇나간 몇십 년의 세월과 마음이 있다.
료타는 자신의 부인 앞에서 "애 딸린 과부는 재혼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나 지껄이는 아버지가 밉고 죽은 형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목욕탕의 깨진 타일이, 늙은 아버지의 건강이 신경 쓰인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쇼핑하는 것이 꿈이라는 엄마의 말에 "그깟 거 태워줄게, 하얗고 큰 SUV를 살게"라며 허세도 부린다.
형의 기일마다 모이는 것은 비단 가족 만이 아니다. 형 준페이는 고향집에 왔다가 바닷가의 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구해주다 죽었다. 준페이가 구해 준 그 아이, 지금은 청년이 된 요시오가 십 년째 기일에 찾아와 절을 한다. 요시오는 취직에 실패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뚱뚱하게 살이 쪘다. 준페이를 위해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돌아가면서도 자신의 인생은 이미 망했다고 비관한다.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준페이가...!"
"하찮다니... 제발 사람 인생 비교하지 마세요. 의사가 그렇게 대단해요?"싸해진 분위기, 다른 가족들은 농담을 건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본다. 가족 모임이란게 대게 그렇다. 누군가 뱉어내는 말에 누군가는 기분이 상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면 다시 이어지는 누군가의 힐난과 정적,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억지웃음 끝에 찾아오는 '정말로' 화기애애한 순간들. 울컥하게 만드는 부모의 사랑과 역시 아니다 싶은 것, 걸어도 걸어도 닿지 않는 타이밍과 마음들.
"있을 때 잘해"... 닿지 않는 우리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