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에 안긴 흑산도 예리항 전경. 철마제를 지냈던 상라산 전망대에서 찍은 모습이다.
이주빈
목포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도초도와 비금도를 벗어나자 선장의 안내방송이 흘렀다. 반복되는 일상인 듯 선장의 목소리에선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다.
"지금부터는 서해남부 먼바다입니다. 파고(波高)가 2미터 이상으로 높게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행객 여러분께서는 지정된 자리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잠시 후, 선장의 말처럼 파도는 쾌속여객선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파도에 부딪힌 여객선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날개 꺾인 새처럼 평형을 상실한 채 좌우로 끝없이 요동쳤다.
상하좌우로 어그러진 불규칙한 신호가 몸을 어지럽혔다. 멀미 기운이 돌았다. 균형을 잡으려 수평선과 시선을 맞추려 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불일치, 여객선은 수평선과 계속 어긋나며 빠르게 스쳤다. 그렇게 어긋나 버린 빠른 스침은, 먼바다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육지로부터 도망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운명처럼 섬에서 태어나 늘 먼바다를 넘나들고 살지만, 이렇듯 먼바다로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고통스런 의례다.
'먼바다'는 육지 사람들에겐 생소한 단어다. 한반도 해안선을 기준으로 20km 이내에 있는 동해와 40km 이내에 있는 서해·남해를 근해(近海) 즉 '가까운 바다'라고 부른다. '먼바다'는 가까운 바다 너머에 있는 바다로, 한반도 육지로부터 동해는 20km 밖에, 서해·남해는 40km 밖에 있다.
바다 너머 바다인 먼바다를 건너 찾아가는 곳은 흑산도. 목포에서 약 92.7km(50해리)나 떨어진 서남해 외딴 섬이다. 지금은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다'해서 '흑산(黑山)'이라 하지만 한 때 흑산은 '월산(越山)'으로 불렸다.
대개의 경우 지명은 닮은 형상을 빗대 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것처럼 달 월(月)자를 써 '월산(月山)'인가 했더니 넘을 월(越)자를 써 '월산(越山)'이란다. 산 너머 바다라는 말인가, 바다 너머 산이라는 말인가. 이토록 지독하게 섬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섬 이름이 또 있을까.
섬은 바다라는 자궁 안을 떠도는 별이다. 늘 그 어떤 '너머'를 꿈꾸지만 늘 그 안에 갇혀 사는 아련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래서 섬은 본능적으로 표류를 획책한다. 수평선 너머 어딘가를 하염없이 동경하는 월경(越境)의 슬픈 물매, 그것이 바로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