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탑에 오른 노동자들이 쉬는 장소.
박점규
해고생활 2년, 오수일씨는 구미와 서울을 오가며 억울한 사연을 알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삿대질을 하며 차가 막힌다고 데모를 그만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가 자영업을 할 때 조끼 입고 구호 외치는 사람들을 적대했던 것처럼.
억울한 사연을 가진 노조가 모여 공동투쟁을 하기로 했다. 모이면 힘이 나고,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투쟁을 하면서 박근혜 정권과 재벌이 비정규직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천막을 치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했다. 노동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철통같은 정권이 무너지겠느냐고 했다. 가난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데 '귀족노조'라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가 부산에서 노조를 향해 '빨갱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2016년 10월 광화문에 첫 촛불이 켜지고, 숨죽여있던 박근혜 퇴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0만 명의 촛불이 50만 명, 1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가 이야기한 박근혜 퇴진 투쟁이 벌어지고,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문제도 알려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박근혜 퇴진 광장에서 노동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석방을 요구하자 "촛불에 숟가락 얹지 말라"는 비아냥이 들려왔다. 해고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시민도 많았지만, 외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촛불 연단에 올라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게 제일 억울하고 아쉽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촛불로 적폐 청산이 되어야 하는데, 대통령만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끝났어요. 적폐가 그 자리를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소리나 민중들의 절박한 삶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공농성을 하기로 결심했죠."고공 농성의 장소로 촛불이 타오른 광화문 네거리를 택한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정권교체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심상정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만 광화문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광화문 광장에서 유세를 하고도, 농성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회사에서 교섭하자는 연락도 없다.
"올라왔는데도 달라진 게 잘 보이지 않아요. 조직된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가 되는 게 보이지 않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치권에서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하물며 제가 속한 금속노조 위원장도 오지 않는데, 누가 신경을 쓰겠어요?"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말없이 찾아와 연대하고 응원하는 많은 노동자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노동악법 철폐를 요구하며 함께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응원도 고맙다. 페이스북을 통해 아빠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큰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아빠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제발 건강하게만 내려와 달라고 했다. 노동조합 행사에도 찾아와 도와주고, 남편을 대신해 돈벌이는 하면서도 남편을 응원하고 있는 아내도 고맙다.
수일씨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아들이 얼마 후면 세상에 나갈 텐데, 아들들이 살아갈 세상은 비정규직 설움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세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싸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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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빨갱이'라던 수일씨는 왜 광고탑에 올라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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