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오리님.
솔롱고스
- 학교는 어때요?"제가 커밍아웃을 아예 아무한테도 안 하고 티도 잘 안 내서 학교에서는 제가 퀴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요. 팽귄님만 알고 있어요. 애초에 애들은 동성애는 많이 들어봤어도 무성애라는 개념 자체를 몰라요. 커밍아웃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을 걸요? 그래서 저는 아웃팅에 대한 걱정을 안 해요. 사실 할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생각하면 좀 슬프기도 하네요. 우리학교 분위기가 성소수자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성소수자라는게 알려지면 저에게 손가락질하는 친구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해요. 만약 아웃팅 당해서 제가 피해를 보게 된다면 강력하게 대응해야 겠다는 생각이고, 또 그럴 마음은 항상 단단히 먹고 있어요."
- 말씀하신 것처럼 무성애자는 다른 정체성에 비해 비가시화된 존재잖아요, 그래서 느꼈던 불편함이 있었나요?"구체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자주 생각이 드는 게, 다른 정체성들은 어쩌다 한 번씩 언급될 때도 있고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 같은데, 무성애는 너무 보이지가 않아서 슬플 때가 많아요. 저 말고도 세상에 무성애자들은 많잖아요. 우리 존재가 가시화되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공감하고, 정보를 접할 때도 훨씬 정확한 정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꼭 가시화되었으면 좋겠어요."
- 학교가 안전하다고 느끼세요?"아니요. 절대로요. 학교라는 곳은 애초에 믿을 수가 없어요.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한다면 선생님들께 혼이 나지는 않겠지만, 치료를 받는 게 어떻겠니, 꼭 그런 사람(성소수자)으로 살아야겠니, 이렇게 무지하게 나올 것 같아요. 교사와 학생들의 인식이 일단 좀 개선되어야 할 것 같아요. 학교에는 저 말고도 틀림없이 다른 퀴어 학생들이 더 있어요. 반드시 있을 거예요. 저와 그 친구들 모두가 안전하게 지내려면 선생님들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 인식이 안 좋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나 문제를 중재해 줄 선생님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예요."
- 학생인권조례 들어보셨어요? 대전에도 성소수자 학생 인권 보장 조항이 생긴다면 어떨까요?"듣자마자 박수치고 난리날 것 같은데요. 눈물 흘리면서 기뻐할 것 같아요.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 조항이 추가된다는 게 당사자가 아니신 분들께는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몰라도 저희 성소수자 학생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큰 일이에요. 완전 큰 경사죠. 우리 인권이, 학교 생활이 직결된 일이잖아요.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을 하고 싶어요. 아직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학생인권조례안 통과로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3. 커밍아웃/지지자들- 커밍아웃은 누구에게 하셨어요?"팽귄님 한 명한테밖에 안 했어요. 그 가입 권유 받았을 때 팽귄님이랑 서로 맞커밍 했고, 그 이후로는 아무에게도 안 했어요. 기억이 잘은 안 나는데 커밍아웃 전부터 팽귄님은 저한테 자꾸 귀띔을 계속 해줬던 것 같아요. 커밍아웃 받을 때는 저 스스로 정체화 할 때처럼 담담했어요. 일단은 제가 같은 퀴어이기도 하고, 커밍아웃을 받기 전에도 sns의 성소수자 친구들에게서 퀴어 이론을 듣거나 차별, 혐오에 대해 많이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그런 반응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고요. 제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도 똑같이 담담했고.
가장 친한 친구와 이렇게 서로 커밍아웃을 하니까 일단 같이 솔롱고스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좋고, 의지가 많이 돼서 좋아요. 아, 그리고 요즘에 커밍아웃 해볼까 하는 친구가 생겼어요. sns 친구이면서 학교 친구예요. 학교에서 그렇게 엄청 친한 편은 아니지만. 그 분 sns를 보면 앨라이스러운 글들이 많이 올라와요. 그 분한테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가족에게는 꿈도 못 꾸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딱히 커밍아웃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요. 내 정체성이 뭔지 설명하는데만도 한참 걸릴 걸요."
- 가족분들이 호모포비아이신가요?"부모님 두 분이 다 보수적이시라 커밍아웃하려면 호적에서 파일 각오를 해야 해요. 오빠도 성소수자 혐오가 엄청 심하고요. 특히 어머님이 종교적 신앙이 되게 강하시거든요. TV에서 동성애 비슷한 코드만 나와도 한 소리씩 하시죠. 가끔 듣고 있기가 너무 답답해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운 적도 있어요. 전에는 엄마랑 동성애 주제로 대화하다 진짜 크게 싸웠던 적이 있어요. 싸우고 나서 제가 막 울고 있었는데 아빠가 보시더니 "엄마랑 왜 싸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동성애 문제로 싸웠어요" 하니까 바로 "아, 그건(동성애는) 안 되지~" 하시더라고요. 안 그래도 기분 진짜 별로였는데 그 상황에서 듣고 진짜 미칠 뻔했죠. 요즘엔 활동하는 거 들킬까봐 솔롱고스 회원 모임 문자도 숨어서 봐요."
- 집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없는 거예요?"사실 집, 학교 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요. 지금 이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요. 주변에 아는 사람 있으면 어쩌지, 엄마가 지나가다 날 보면 어쩌지, 친구나 다른 사람이 날 알아 보면 어쩌지 해요. 만약 제가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뜻을 보이면 "너도 동성애자야? 왜 지지해?" 이렇게 나오는 사람들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에요. 너무 답답하죠. 회원 모임에 있다가 전화가 와도 깜짝 놀라면서 받고 항상 대충 둘러대죠. 항상 전전긍긍해요. 또 집은 엄청 가부장적인 분위기니까, 저는 성소수자 혐오, 여성 혐오와 나이가 어리다고 받는 차별을 동시에 그대로 다 겪어요. 가끔은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요."
- 집, 학교 어디서든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신다면, 안전해지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이거 되게 자주하는 생각인데요. 일단 학교에서 안전하려면 학생인권조례안 통과는 당연히 이루어져야하고, TV 방송 프로그램을 좀 어떻게 해야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보는 뉴스, 예능 이런 게 사람들 생각과 사상에 영향을 미치잖아요. TV만 틀어대면 여성을 성상품화하고, 동성애를 희화화하고 가볍게 여기고, 개그우먼들이 못생긴 캐릭터 잡고 비난받아가며, 외모 가지고 차별하는게 웃음으로 승화되죠.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TV에서 차별을 조장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차별적 요소가 가득한 프로그램을 보고 학교 친구들도 차별을 일삼는 것 같아요. 차별이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일상에 배어있는 느낌이에요. 인식이 변화하는 데 있어서 교육만큼이나 이런 대중매체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준비된 질문은 여기까지인데 더 하고 싶은 말 있나요?"'너 그럼 연애 못해? 연애감정 못느껴? 무성욕자인 거야? 어떡해 불쌍하다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아' 무성애자에게 제발 이런 말들 좀 하지 마세요. 난 내 인생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제가 왜 불쌍한 사람이에요? 말하기 전에 듣는 상대방 기분도 헤아려주세요.
인터뷰에 참여하신 오리님은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의 회원이다.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는 2015년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악 저지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정상적 성과 비정상 적 성으로 구획하여 이성애 정상성을 지원하는 시스젠더 헤테로 유성애자 중심적 사회에 저항하며, 수도권 중심으로 자원이 집중되는 수도권 중심주의에 문제의식을 갖고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대전 시민들과 행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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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때 무성애 자각... 이런 말 제발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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