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라는 시선, 그로 인해 첫 번째 혐오의 벽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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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늘 신경 쓰이던 사람이 있었다. 활짝 휘어지는 '개구진'(짓궃은) 눈매, 크게 벌린 입, 거침없는 웃음소리, 영어가 싫다며 시무룩해하는 모습, 그 사람의 행동에 온 감각이 활짝 깨어 있었다. 지금은 그 당시의 내 모습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됐지만 당시에는 이런 나의 모습에 적절한 언어를 붙이지 못했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 친구를 지수가 많이 좋아하나 보다'로 설명되고 '그렇구나' 납득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여성끼리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성 간에 사랑을 나누고 함께 하는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교과서에도 텔레비전에서도 교사들도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친구'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붙이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하지 못했기에 언어화할 수 없었다.
그저 '많이 좋아하나 보다'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들. 왜 다른 친구들은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것처럼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친구를 사귈 때 그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에 설레어 하는지, 그 사람의 마음속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또래와는 다른 것 같았다. 고데기로 말아서 어떻게든 학교 규정을 피해 머리를 길러보려는 또래들과는 다르게 교칙이 요구하는 것보다 짧게 자르고 다녔다. 층을 낸 커트머리였다. 그게 멋진 거라 생각했다. 남자연예인 얘기, 또래 남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남자애들보다는 여자애들의 상기된 뺨, 가느다란 손, 지나갈 때면 코끝에 감도는 샴푸향기에 끌림을 느꼈다.
또래와 세상과 계속해서 불화를 겪었다. 중학생 때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권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듣지 않고 상담을 받게 됐다. 외부에서 사람이 왔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얘기해보라고 했다. 처음엔 서로를 탐색하며 안전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학생이 힘든 게 뭐 있어요. 시험 때문에 힘들어요." 이런 얘기들. 그리고 3주차가 되던 날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대해 얘기했다. 한 친구와 아주 먼 미래에도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늘 그 친구가 있다. 친구는 책을 좋아하니 집에 꼭 책방을 만들고 싶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하니 피아노방도 있으면 좋겠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상담선생님은 그 나이대 여자들은 한번쯤 누구나 해보는 생각이라고 얘기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말하는 것과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뭔가 달랐다.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주 먼 거리에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상담이 끝났다. 상담이 끝난 후 나는 그 선생님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막연히 나를 감싸고 있던 두려움이 실체화됐다. 상담선생님이 상담내용을 내 동의 없이 교사에게 얘기했고 교사는 부모에게 전달했다. 부모는 내가 이상한 걸 봐서 그렇다며 동네 만화책방과 비디오방에 OOO이라는 애가 오면 절대 빌려주지 말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너 때문에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며 소리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가면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문의 내용이 구체적인 언어로 들려왔다.
"쟤 동성애자 아냐?"이게 내가 마주한 첫 번째 혐오의 벽이다.
여자애가 꼴이 그게 뭐냐며 화장을 시켰다학교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껄끄러워졌다. 동네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학원에 등록하러 갔을 때는 미심쩍은 눈초리와 원생 모집 기간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고 돌아서야 했다. 다른 학생이 그 학원에 등록된 걸 보면 내가 학원에서 거절당한 이유가 단순히 원생모집기간이 아니어서만은 아닐 거다.
학교에서, 마을에서 내가 있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져갔다. 결국 뺑뺑이를 돌려서 가는 마을 고등학교가 아니라 일부러 집에서 먼 학교를 선택해서 도망갔다.
그렇게 도망간 고등학교도 안전한 공간이 되지는 못했다.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따돌림의 이유가 됐다. 왜 머리를 기르지 않는지, 화장하지 않는지, 왜 렌즈를 끼지 않고 안경을 쓰는지. 그래서 남자친구를 사귈 수는 있을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늘 '정상'에서 벗어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
같은 반 학생들이 억지로 나를 붙잡고 여자애가 꼴이 그게 뭐냐며 화장을 시켰다. 내 자리와 교실 문에 삼사십 명 되는 학생들이 무슨 일이냐고 모여들어서 환호하고 비웃어댔다. 수치스러운 와중에 여자로 만들어줬으니 감사해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장남자 같다며 에워싼 학생들이 비웃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혹시 내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지는 않았을지 나는 매일매일 벌벌 떨며 인터넷을 검색해야 했다.
교사들은 내가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상담을 신청했지만 "공부 잘 하려면 친구는 없어도 된다. 친구 없으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라는 답변을 들었다. 학교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었기에 나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받아낼 수 없었다. 나는 학교에 적응하는데 실패했고 교사와 부모에게 감시와 보고의 대상이 됐다.
안전한 공간을 찾다가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알게 됐다. 그 곳에서 내가 겪은 일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젠더 헤테로(신체적 성과 사회 문화적 성의 일치, 이성애자)만을 정상으로 여기고 사람들의 다양한 젠더표현, 성적지향을 억압하는 폭력, 인권침해의 문제로 봐야 하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청소년들이 겪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타임머신은 개발되지 않았으니 15살, 17살 어렸던 나로 돌아가 덜 상처받도록 보듬어줄 수는 없고,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거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세상을 바꾸고 싶어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에서 지지자를 찾지 못 하고 고립되어 있다. 2014년에 발표된 'LGBT 사회적 욕구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623명 중 45%가 말투나 행동으로 폭언과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 자살 시도율은 46%이며 자해경험 비율은 53%로 나왔다. 이는 2011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조사 결과 청소년 자살 시도율이 4.4%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과 성소수자라는 이중 억압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학교 공간에서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조치가 절실하다.
인권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