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 허씨 일가가 배출한 독립운동가들. 맨 왼쪽에 허형식이 있다.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안의 전시물 중에서.
장호철
동북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 지도 아래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을 수행한, 중국인과 한국인 등이 참여한 민족통일전선의 성격을 지닌 군사조직이었다. 전성기인 1938년께 3만 명이 넘었던 항일연군은 일제의 만주 및 중국 침략에 커다란 장애였을 뿐 아니라 국내 진공작전을 펼쳐 일본을 괴롭히곤 했다.
허형식은 당시 북만주 항일투쟁 각 부대 간의 총괄 조정과 공동작전을 연계시키는 매우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제가 76만 명으로 늘린 관동군으로 토벌 작전에 나서면서 항일연군에게는 시련과 위기가 닥쳐왔다.
이에 중국공산당은 항일연군 지도부와 잔여 병력들을 소련 영내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허형식은 끝내 소련 국경을 넘지 않고 소부대 활동으로 무장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북 유격전구와 인민을 지켰다. 전술, 전략적 판단 이전에 그는 양심상 동북의 전구와 인민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1942년 8월 3일 이른 새벽,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소부대의 현지 지도에 나섰던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의 허형식 군장은 만주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어 뒤늦게 현장에 온 부하들은 그의 다리뼈 하나밖에 수습하지 못했다.
토벌군은 그의 머리를 베어 경안경찰서 입구에 매달았다. 백마를 타고 항일 파르티잔을 지휘하던 헌헌장부, 때로 본명보다 이희산(李熙山)이나 이삼룡(李三龍)으로도 불리었던 이 혁명가는 토벌대와 교전할 때 썼던 권총 한 자루를 남기고 풍운의 삶을 마감했다.
1942년 8월 1일, 소련 극동군은 동북항일연군의 잔류대원을 동북항일연군 교도려로 편성하면서 간부들을 소련군으로 편제했다. 북만주의 허형식도 이 부대에 일방 편제되었다. 교도려 지휘부에는 최용건(부참모장), 허형식과 김일성(영장), 김책(정치위원) 등이 포진해 있었다.
소련이 편성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 조직으로 볼 때, 소련에서는 허형식과 김일성 두 인물을 대등하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사학자 강만길이 "허형식이 북만주에서 희생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북녘 아니면 남녘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정부를 세웠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틀 후, 허형식은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자신의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가 숨지던 그 8월은 만주국 신징 군관학교 2기 예과를 졸업한 상모동 출신의 박정희가 5개월 동안의 현장 실습을 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허형식보다 8살 아래의 이 조선 청년은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으로 입교한 군관학교를 지난 3월에 졸업했던 것이다.
역사의 갈피에서 되살려낸 '허형식 장군'실록소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은 박도 작가가 어린 시절, '나라를 구할 조선의 무명베와 같은 튼실한 사람'을 찾아보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받드는 가운데 이루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55세 때에 중국의 항일유적지 답사 길에서 운명처럼 허형식 장군을 만났고, 16년 만에 잊히고 있는 역사의 갈피에서 그를 되살려냈다.
작가는 작품을 펴낸 뒤, 오대산에 모신 조부께 고유(告由)하고 월정사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장군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금오산 기슭 채미정(採薇亭) 앞에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세워지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채미정은 여말의 선비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뒷사람들이 건립한 정자다(관련 기사 :
산천의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그가 몰락한 왕조의 의리를 지키며 은둔한 골짜기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항일투사의 모습이 재현된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그러나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한말 12도 창의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했던 의병장 왕산 허위를, 그의 종질로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이었던 허형식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이 고을에 얼마나 될까. 철길 건너 만주군 출신 독재자의 유적은 날마다 드높아지고 있지만 투사의 삶은 잊히고 있는 이 2017년의 벽두에.
허형식 장군 -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박도 지음,
눈빛,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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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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