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반기문 광장에 설치된 반기문 사무총장 흉상
충청리뷰
충북 음성에 가면, 마을 어귀에서 머리 큰 반기문 동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 옆에는 검은 하트 모양의 구조물에 흰색 유엔 상징이 새겨져 있고, 반기문은 '유엔'이라고 새겨진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열심히 뛰는 자세로 얼어붙어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고향 음성입니다" 음성군청 청사 전면에는 건물 너비와 맞먹는 거대한 현수막이 붙어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곳에 세워진 '반기문 기념물'의 서막에 불과하다. 음성에는 잘 알려진 반기문 생가, 반기문 기념관, 반기문 평화랜드, 반기문 비채길 등이 있다. 반기문 이름을 딴 전국적 행사도 여럿이다. 반기문 영어경시대회, 반기문 마라톤대회, 심지어 반기문컵 국제오픈 태권도 대회까지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애나 파이필드 기자는 반기문이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뒤 음성을 찾았다. 그는 다양한 반기문 시설을 둘러 보았는데, 그 중 생가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곳에 소개된 반기문의 일대기를 확인하고 소책자로 된 '반기문 어록'까지 읽은 그는 신문에 이렇게 썼다.
"맞다, 이곳은 분명히 남한이다. 당신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찬미하는 박물관이나 기념비를 돌아본 뒤 이곳을 찾았다면, 혹시 내가 비무장지대에서 길을 잘 못 들어 북한으로 되돌아 간 게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2016. 8. 15. <워싱턴포스트> "반기문의 대선행보에 떠들썩한 음성군")위 기사를 불쾌하게 여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산 사람의 생가를 복원하고, 동상을 세우고, 그 사람의 이름을 딴 온갖 시설과 행사를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은 분명히 아니다. 같은 이유에서, 기자가 일해공원을 보았다면, 독재자의 아호를 딴 기념물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두 사람이 동일하게 비교될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지위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와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둘 사이의 연결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1985년 반기문이 하버드대학에서 연수를 받던 시절, 미국에 체류 중이던 김대중 관련 정보를 전두환 정권에 보고한 일이 있다. 이는 반기문이 귀국한 뒤 해명해야 할 여러 의혹 가운데 하나다.
반기문은 '준비된 인재'?그렇다면 반기문은 어떻게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을까? 꿈꾸고 노력하고 준비해서? 물론 그럴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어했고, 그를 위해 부지런히 영어공부를 했다고 한다. '반기문 영어경시대회'는 바로 이런 노력을 기리고 본받자는 행사일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반기문을 향한 비판의 첫 번째는 '소통능력의 부재'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반기문이 "고통스러울만큼 말주변이 없다(painfully ineloquent)"고 평한다. 그리고 다수가 그 원인으로 언어능력 부족을 꼽는다. 지난 9월 20일 반기문 특집기사를 낸 미국의 <네이션>지는 반기문이 유엔의 공식 언어인 영어와 불어 모두가 서툴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는 공식 연설문을 읽을 때에는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방송 인터뷰나 기자회견 때에는 한계가 확연히 두드러진다. 영국 런던대 영문과의 헨리 위도슨 교수는 반총장의 발언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예컨대 반기문은 세계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한다.
"The world is going through global communication and globalizations. The China is number 2 economic power in the world."뜻이 되게 번역하면 "세계는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과 세계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입니다"가 되지만, 두 문장 모두 기초적인 문법과 어법을 무시하고 있다. 몇 가지만 지적하자면, '세계화(globalization)'는 복수형을 쓸 수 없는 추상명사이고, '중국(China)'은 관사를 쓸 수 없는 고유명사이며, 명사구인 '2의 경제대국(number 2 economic power)'는 앞에는 정관사(the)를 붙여야 한다.
반기문의 언어 문제는 유엔 직원들도 오래 전부터 잘 인식하고 있었다. 영국 <가디언>지는 2010년 6월에 "유엔의 '투명인간' 반기문의 수행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최근 은퇴한 유엔 관리에 따르면, 반기문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영어실력의 부족이다. 그로 인해 미국과 그외 다른 나라에서 사람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유엔 직원들은 반기문에게 말하기 훈련을 시키고 언론 대응법도 가르쳐 왔다고 그 전직 관리는 말했다. 한 주에 두 세 차례 말하기 훈련을 시켰고, 그것이 도움이 되긴 했으나 충분치는 않았다. '우리들은 그에게 가급적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