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부중고 6대 정식영 교장선생님
자료사진
"학생들의 숨통을 좀 틔여 주십시오.""안 됩니다.""너무 힘들어합니다. 저희 학년 수학여행이라도 허락해 주십시오.""안 됩니다. 수업 결손이 너무 많아집니다."나는 그때 문득 '수업 결손'이라는 말을 잠재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업결손을 해치지 않고 다녀오겠습니다.""…."정 교장선생님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여름방학 끄트머리에 다녀오겠습니다.""네에?""개학 3~4일 전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때는 성수기도 막 지난 때라 숙소도 교통도 원활할 겁니다."마침내 정 교장선생님은 입을 열었다.
"그럼 박 선생님이 책임지고 인솔해 다녀오시오."나는 뛸듯이 기뻤다. 3층 교무실로 돌아와 그 사실을 교감선생님 및 학생부장, 다른 담임선생님에게 알리자 의외의 수확이라고 모두 반겼다. 학생들도 환호했다. 그래서 그 일을 당시 백행철 학생부장과 함께 추진했다.
암초를 만나다나는 수학여행 장소로 설악산 및 동해안으로 잡았다. 나 자신 경주 수학여행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과 닳고 닳은 여행업자들의 횡포, 빡빡한 볼거리보다는 학생들에게 푸른 산과 동해바다를 보여주는 게 더 교육적일 것 같은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암초가 솟아올랐다. 그 무렵 학교에서 단체로 수학여행을 가려면 반드시 서울시교육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전세버스 이용은 일체 허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몇 해 전 1970년 서울 경서중학교 학생들을 태운 수학여행단 버스운전기사가 모산 건널목을 건널 때 앞차와 거리 유지에 신경을 쓰느라 옆 경계를 소홀히 해 특급열차와 충돌하여 45명이 사망하고, 29명이 중상을 입는 대형 사고가 일어난 여파 때문이었다. 그 이후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전세버스 수학여행은 일체 불허하던 중이었다.
여러 날 고심 끝에 짜낸 묘안은 일단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원주로 간 다음 거기서 버스로 설악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교육청의 지시사항을 교묘히 빠져나간 묘안으로 결국 열차삯은 필요 없는 이중 지출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장거리 열차 여행을 해보지 못한 숱한 서울내기 학생들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이기도 했다.
나와 백 학생부장은 전 코스를 사전 답사했고, 설악산의 한 숙소를 예약하면서 제발 인솔교사와 학생의 밥을 똑같이 달라고 통사정했고, 결국 그렇게 하기로 언약을 받았다. 나는 학창시절 수학여행지에서 교사와 학생밥상의 차별이 교육 목적상 대단히 나쁘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모처럼 귀한 수학여행을 위해 학생들의 여행코스를 다양하게 잡았다. 그래서 설악산으로 가는 길은 장수대 한계령을 넘어 낙산사를 거치는 여정을 잡았고, 돌아오는 길은 대관령을 넘어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를 경유케 했다.
'에벤에셀'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