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런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고 싶었단 말이다.
이영섭
일상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 가만 생각해보면 그랬다. 얼마 전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봉지씩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 거 같다. 그리고 동네를 걷다 돌담 너머로 흘깃흘깃 쳐다본 이웃 집 거실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몇 번 본 거 같다. 아뿔싸, 나도 그때부터 서둘러야 했던 건가. 제주 사람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열정이 이 정도로 높을 줄 몰랐던 게 패착이다.
제주에 와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돈, 정확히 말하면 높은 수입이 일상 속 행복의 크기와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서로 반비례하는지도 모르겠다.
은퇴할 나이가 돼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려온 분들, 혹은 원래 가진 재산이 넉넉해 여유 있게 이주한 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주 이주민들은 육지에 비해 수입이 줄어든 경우가 많다. 전국 최하위권 임금을 감내하고 있는 회사원 대부분이 육지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월급으로 버티는 경우가 다반사고, 일부 잘 나가는 집을 제외하면 자영업자들의 수입 역시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커버해줄 커다란 장점이 존재한다. 수입은 적지만 시간적 여유가 도시사람들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가끔 예외는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제주 회사들은 야근이나 회식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다. 자영업도 마찬가지다. 도심지 내 대형 식당이나 판매점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아침 늦게 오픈해서 오후 5시가 되면 문을 닫기 시작한다. 서울의 자영업자들은 꿈도 못 꿀 주 1회 휴식일도 대부분 철저히 지킨다.
처음에는 이런 점이 꽤나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육지에서 넘어온 분들이 운영하는 소위 맛집들은 오후 5시만 되면 칼 같이 문을 닫아버리는 데다, 동네 음식점들 역시 오후 6시 이후에는 대부분 영업을 종료하는 탓에 저녁에 외식을 하려면 메뉴 선택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 제주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붓는 경우가 드물다.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업무를 다 처리했든 남았든 업무종료 시간이 되면 일과를 마무리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인 것 같다. 상대적으로 수입도 높고, 문화생활과 쇼핑을 즐길 인프라도 훨씬 잘 갖춰진 서울사람들보다 제주사람들이 더 열심히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이유, 서울에서보다 수입은 많이 줄었지만 가족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의 횟수와 농도가 짙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 개인적 시간의 여유 때문인 듯하다.